독일어는 유럽 언어 중 가장 철학적인 언어라는 말이 있다. 그 언어로 세 사람이 각자의 세계를 열었다. 괴테는 인간이 신에게 닿으려는 충동 — ‘끝없는 추구’ — 을 파우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토마스 만은 부르주아 문명의 화려한 쇠락을 해부하면서, 아름다움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여주었다. 카프카는 그 문명의 이면에서 숨막히는 미로를 발견했다 — 이름도 알 수 없는 법, 문도 없는 성, 어느 날 아침 벌레가 된 인간. 세 사람은 같은 언어를 썼지만, 그 언어로 전혀 다른 진실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세 진실은 합쳐져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지형도를 이룬다.
독일어권 문학의 역사는 길다. 중세의 니벨룽겐의 노래부터 18세기 계몽주의, 19세기 낭만주의, 그리고 20세기의 표현주의와 망명 문학까지. 그러나 이 긴 역사에서 세계 문학의 정전(正典)으로 자리 잡은 이름은 셋으로 좁혀진다. 괴테, 토마스 만, 카프카. 세 사람은 각각 18세기 말,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대표하며, 각자의 시대가 독일어권 문명에 제기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하려 했다.
세 작가의 생애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1832) · 프랑크푸르트 출생 · 바이마르 체류 57년 · 파우스트 완성에 60년 — 독일 고전주의의 정점
토마스 만 (1875–1955) · 뤼베크 출생 · 노벨 문학상 수상(1929) · 나치 망명 — 부르주아 문명의 해부학자
프란츠 카프카 (1883–1924) · 프라하 출생 · 41세에 요절 · 사후 출판 — 현대적 소외의 예언자
괴테: 끝없이 추구하는 자는 구원받는다
1749–1832
스물네 살의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을 발표한 것은 1774년이다. 출판 직후 유럽 전역에서 모방 자살이 잇따랐다 — 소설이 사회 현상이 된, 문학사 최초의 사례 중 하나다. 그러나 괴테는 그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훨씬 거대한 프로젝트를 머릿속에 품고 있었다. 인생 전체를 바쳐 완성하게 될 작품, ‘파우스트(Faust)’.
파우스트 박사는 모든 학문을 통달했지만 진리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늙은 학자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를 한다 — 현세에서 완전한 만족을 느끼는 순간, 자신의 영혼을 내주겠다고. 그 대가로 지식, 쾌락, 청춘, 사랑, 권력을 모두 경험한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끝내 멈추지 않는다. 만족할 줄 모르는 것, 계속 추구하는 것 — 그것이 그의 본질이었다. 파우스트는 결국 구원받는다. 이유는 단 하나다. 그는 ‘끝없이 추구했기’ 때문에.
“멈추어라, 너 참으로 아름답구나!(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
— 괴테, 『파우스트 1부』 파우스트의 악마와의 거래 조건
괴테는 파우스트를 스물두 살에 구상하기 시작해 여든두 살에 완성했다. 60년의 집필. 한 사람의 전 생애가 하나의 작품 안에 담겨 있다. 그래서 파우스트는 괴테의 자전적 작품이기도 하다 — 지식에 대한 갈망, 사랑의 비극, 정치 권력의 유혹, 창조의 기쁨, 죽음 앞의 인간. 이 모든 것이 두 권의 희곡 안에 있다.
흥미로운 것은 괴테 자신의 삶도 파우스트를 닮아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 정치 행정을 맡으면서, 동시에 식물학·광물학·빛의 색깔 이론까지 연구했다. 시인이면서 과학자였고, 예술 후원자이면서 관료였다. 일흔네 살에는 열일곱 살 소녀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럼에도 쓰고, 연구하고, 사랑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비웃었던 ‘끝없는 추구’를 그는 실제로 살았다.
괴테의 또 다른 업적은 독일 문학의 언어를 만든 것이다. 루터가 성경 번역으로 독일어를 통일했다면, 괴테는 그 언어를 예술의 높이로 끌어올렸다. ‘파우스트’의 문장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의 산문, ‘서동시집’의 시. 현대 독일어 문학의 기준이 괴테에서 시작한다. 실러(Schiller)와 함께 이룩한 바이마르 고전주의는 독일 정신의 황금기로 불린다.
토마스 만: 아름다움은 죽음의 얼굴을 하고 있다
1875–1955
1901년, 스물여섯 살의 토마스 만은 첫 장편소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Buddenbrooks)’을 발표했다. 뤼베크의 부유한 상인 가문이 4대에 걸쳐 몰락하는 이야기다. 나중에 이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그는 수상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소설을 위해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다.” 실제로 토마스 만의 가문은 뤼베크의 대상인 가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세계의 쇠락을 소설로 기록했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의 핵심 테마는 ‘예술가 기질과 시민 사회의 대립’이다. 상인 가문의 4대손 한노는 뛰어난 음악적 감수성을 가졌지만 현실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열다섯에 병으로 죽는다. 예술적 감수성은 풍요롭지만 삶의 활력을 갉아먹는 것처럼 보인다. 이 역설 — 정신적 고양과 육체적 쇠약의 결합 — 이 토마스 만 문학 전체를 관통하는 모티프다.
“아름다움은 정신이 감각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는 언제나 죽음의 냄새가 섞여 있다.”
— 토마스 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에서
1912년 발표한 중편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에서 이 테마는 절정에 이른다. 노년의 대작가 아센바흐는 베네치아에서 열네 살 폴란드 소년 타지오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다. 페스트가 도시를 휩쓸고 있음을 알면서도 떠나지 못한다. 아름다움이 그를 죽음 앞에 붙잡아 두는 것이다. 이 소설은 아름다움, 욕망, 예술가의 도덕적 위기, 그리고 죽음을 하나의 에피소드 안에 완벽하게 압축했다. 구스타프 말러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진 아센바흐는 말러가 죽은 해에 쓰여졌다.
만의 대작 ‘마의 산(Der Zauberberg)’(1924)은 스위스 다보스의 결핵 요양원을 무대로 한다.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입원한 사촌을 문병하러 3주 예정으로 왔다가 7년을 머문다. 요양원은 바깥세계가 차단된 공간이다. 그 안에서 카스토르프는 인문주의자와 예수회 신부, 자본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낙관론자와 허무주의자의 논쟁을 들으며 스스로의 세계관을 형성한다. ‘마의 산’은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 문명의 지적 풍경을 담은 거대한 소설적 에세이다. 결핵이 은유이고, 요양원이 은유이고, 7년이 은유다.
나치가 권력을 잡자 만은 망명을 택했다. 처음 스위스로, 그 다음 미국으로.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강연하고, 라디오를 통해 독일 국민에게 나치에 저항하는 연설을 방송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독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어디에 있든 독일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1955년 취리히에서 8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독일 문학의 가장 큰 이름 중 하나였다.
카프카: 법정은 존재하지만 법은 알 수 없다
1883–1924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음을 발견한다. ‘변신(Die Verwandlung)’의 첫 문장은 세계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첫 문장 중 하나다. 그런데 소설 안에서 이 사건은 설명되지 않는다. 왜 벌레가 되었는지, 어떻게 되돌아갈 수 있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가족도, 그레고르 자신도. 그저 벌레로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만이 남는다. 이 설정이 카프카 문학의 본질이다 — 부조리는 설명되지 않고, 그냥 주어진다. 인간은 그 안에서 적응하거나 죽을 뿐이다.
카프카는 프라하의 유대계 독일어 사용 가정에서 태어났다. 체코인들 사이에서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 세 겹의 소수자. 이 정체성의 불안이 그의 문학을 형성했다고 많은 비평가들이 말한다. 낮에는 노동자 보험국에서 일했고, 밤에 글을 썼다. 생전에 출판된 작품은 몇 편의 단편과 중편뿐이었다. 장편소설 세 편 — ‘아메리카(Amerika)’, ‘소송(Der Proceß)’, ‘성(Das Schloß)’ — 은 모두 미완성이었다. 그는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이 죽으면 원고를 모두 태워달라고 유언했다. 브로트는 그 유언을 어겼다.
“K.는 아무리 기다려도 성에서 아무런 허가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성에 들어가는 것이 그의 목표였으니까.”
— 카프카, 『성(Das Schloß)』
‘소송(Der Proceß)’은 이렇게 시작한다. “누군가 요제프 K.를 모함했을 것이다.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으니까.” K.는 자신이 무슨 죄로 기소되었는지 끝내 알지 못한다. 법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법이 무엇인지도. 그럼에도 재판은 진행되고, 집행은 이루어진다. 이것이 카프카가 발명한 세계다 — 처음부터 유죄인 것처럼 취급받는, 자신을 옭아매는 구조를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그 구조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인간.
카프카의 개인사도 소설만큼이나 역설적이었다. 그는 세 번 약혼했지만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다. 결혼을 원했지만 두려워했다. 글쓰기를 사랑했지만 자신의 글을 태워버리고 싶었다.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체구가 크고 의지가 강한 사업가였다. 카프카는 평생 그 아버지의 그림자 아래 살았다.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 실제로 전달되지 않은 — 에는 이렇게 썼다. “나는 본래 당신의 기대에 부응할 능력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아버지라는 권위, 이해할 수 없는 요구,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않는 인정 — 이것이 ‘소송’의 법원이 아니었을까.
1924년, 카프카는 폐결핵으로 마흔한 살에 세상을 떠났다. 말기에는 후두까지 번져 음식을 삼킬 수 없었다. 음식을 볼 수는 있지만 먹을 수 없는 마지막 나날은 ‘단식 광대(Ein Hungerkünstler)’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그 단편에서 단식 광대는 굶는 것이 직업이지만, 진짜 이유는 단순하다 —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삶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지 못한 채 죽어가는 인간. 카프카 자신처럼.
세 개의 심연, 하나의 언어
괴테, 토마스 만, 카프카는 같은 독일어로 썼지만 인간을 보는 시각이 극적으로 달랐다. 괴테에게 인간은 추구하는 존재다. 끝없이 결핍을 느끼고, 그 결핍을 채우려 하며, 그 과정에서 성장하고 구원받는다. 낙관주의는 아니지만 인간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있다. 토마스 만에게 인간은 긴장하는 존재다. 정신과 육체, 예술과 시민성, 아름다움과 죽음 사이에서 영원히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그 긴장을 살아내는 것이 문명이다. 카프카에게 인간은갇힌 존재다. 이해할 수 없는 구조 안에 던져져, 출구를 찾지 못하고, 그래도 멈추지 않는 —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다.
괴테
추구하는 인간
파우스트의 질문: 만족이란 존재하는가? 끝없이 추구하는 것 자체가 구원의 조건이다.
토마스 만
긴장하는 인간
아름다움은 죽음을 품고 있다. 문명은 그 모순을 견디는 힘으로 세워진다.
카프카
갇힌 인간
법은 있지만 이해할 수 없다. 구조는 있지만 출구가 없다. 그래도 인간은 계속 두드린다.
세 작가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다. 토마스 만은 괴테를 평생의 정신적 스승으로 삼았다. 그는 괴테에 관한 소설 ‘바이마르의 로테(Lotte in Weimar)’를 직접 썼고, 파우스트의 전설을 20세기에 다시 쓴 ‘파우스투스 박사(Doktor Faustus)’에서 괴테의 주제를 나치 시대의 독일에 겹쳐 놓았다. 카프카와 토마스 만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정반대의 자리에 있었다. 만은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던 노벨상 수상자였고, 카프카는 무명이었다. 그러나 만은 카프카의 글을 읽고 “비범한 재능”이라고 평했다. 카프카가 자신의 글이 세계 문학의 정전이 될 것을 알았다면, 브로트에게 태우라는 유언을 남겼을까.
역사적 맥락도 흥미롭게 겹친다. 괴테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의 격변 속에서 바이마르 고전주의라는 인문주의적 이상을 세웠다. 토마스 만은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에서, 독일 문명이 나치즘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목격하며 그 원인을 추적했다. 카프카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야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관료제 속에서, 현대 국가 권력이 개인을 어떻게 익명화하고 무력화하는지를 미리 보았다. 세 사람의 작품은 독일어권 역사의 150년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증언한다.
괴테는 인간이 무한히 손을 뻗을 수 있다고 믿었다. 토마스 만은 그 손이 아름다움과 부패를 동시에 만진다고 말했다. 카프카는 아무리 뻗어도 닿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썼다. 셋이 합쳐지면 독일 정신의 완전한 초상이 된다.
— 독일어 문학의 세 심연
독일어는 아직 살아 있다
‘카프카에스크(Kafkaesque)’라는 형용사가 영어 사전에 있다. 관료적 미로, 이해할 수 없는 규칙, 출구 없는 상황을 묘사하는 말로 일상적으로 쓰인다. 괴테의 ‘파우스트적(Faustian)’ — 욕망과 야망을 위해 영혼을 파는 거래 — 도 마찬가지다. 토마스 만의 이름은 아직 형용사가 되지 않았지만, ‘마의 산’과 ‘부덴브로크’는 독일어권 교육의 필수 목록에 남아 있다. 세 작가가 발명한 언어와 이미지는 이미 우리의 사고방식 안에 녹아 있다.
이들이 한국 독자에게 특별히 의미 있는 이유도 있다. 근대화와 전통의 충돌, 개인과 국가 권력의 긴장,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 괴테가 살았던 시대의 독일, 토마스 만이 목격한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 카프카가 숨막혀했던 관료제 — 이 모든 것에서 한국의 근현대사와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 문학이 민족을 넘어 울린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다.
괴테는 바이마르의 정원 집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전해지는 마지막 말은 “더 많은 빛을!(Mehr Licht!)”이다 —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그가 살았던 삶에는 딱 맞는 말이다. 토마스 만은 취리히 병원에서 동맥류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직전에도 침대 옆에 원고가 있었다. 카프카는 키얼링의 요양원에서 친구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꽃들을 치워주게, 아프니까.” 세 사람의 마지막 순간도 그들의 문학만큼이나 다르다.
대표작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1부(1808)·2부(183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1795–96), 서동시집(1819), 이탈리아 여행(1816–17)
- 토마스 만: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1901), 베네치아에서의 죽음(1912), 마의 산(1924), 요셉과 그 형제들(1933–43), 파우스투스 박사(1947), 바이마르의 로테(1939)
- 프란츠 카프카: 변신(1915), 소송(1925, 사후), 성(1926, 사후), 아메리카(1927, 사후), 단식 광대(1922),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1919, 사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