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일본 문학에는 세 개의 이름이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눈 위에 내리는 빛처럼 섬세한 아름다움을 썼고, 다자이 오사무는 자기 파괴의 일기를 소설이라 불렀으며, 미시마 유키오는 육체와 관념 사이에서 칼날 같은 문장을 벼렸다. 세 사람은 같은 일본어를 사용했지만, 그 언어로 전혀 다른 세계를 열었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일본 근대문학은 메이지 유신과 함께 시작되었다. 서양 문학의 충격 속에서 일본의 작가들은 자기 언어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탐색했다. 나쓰메 소세키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첫 번째 세대였다면, 가와바타·다자이·미시마는 그 다음 세대다. 전쟁과 패전을 직접 겪었고, 전통과 서양 사이의 균열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세대. 그들이 쓴 것은 소설이면서 동시에 일본이라는 문명의 자화상이었다.
세 작가의 생애
가와바타 야스나리 (1899–1972) · 오사카 출생 · 노벨 문학상 수상(1968) — 일본 미학의 정수
다자이 오사무 (1909–1948) · 아오모리현 출생 · 39세에 생을 마감 — 자기 파괴의 천재
미시마 유키오 (1925–1970) · 도쿄 출생 · 노벨상 후보 3회 — 미학과 행동의 극단
가와바타: 아름다움의 끝에서
1899–1972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두 살 때 아버지를, 세 살 때 어머니를 잃었다. 일곱 살에 할머니가, 아홉 살에 누나가, 열네 살에 마지막 남은 할아버지가 죽었다. 열네 살의 소년은 세상에 완전히 혼자 남겨졌다. 이 연쇄적인 상실은 그의 문학을 규정하는 핵심이 되었다. 아름다운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감각,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인식. 일본 미학의 핵심인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 — 사물의 애잔함 — 를 그보다 깊이 체현한 작가는 없었다.
1926년 발표한 『이즈의 무희(伊豆の踊子)』에서부터 이미 가와바타의 특질은 완성되어 있었다. 이즈 반도를 여행하는 스무 살 청년이 떠돌이 예인 집단의 열네 살 소녀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러나 둘 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눈빛, 잠깐의 미소, 작별. 가와바타는 일어나지 않은 일의 아름다움을 쓰는 작가였다. 그의 문장은 말하지 않는 것으로 말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 나라였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雪国)』 첫 문장
『설국(雪国)』(1935–1947)은 일본 문학 사상 가장 아름다운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도쿄의 부유한 유한자 시마무라가 눈 덮인 온천 마을의 게이샤 고마코에게 끌리면서도 끝내 진심을 주지 못하는 이야기다. 12년에 걸쳐 쓰인 이 소설에서 가와바타는 일본의 사계절, 눈의 질감, 거울에 비친 풍경, 여인의 목소리가 가진 온도를 언어로 옮겼다. 서양 소설의 플롯 중심 구조와는 완전히 다른, 정서와 감각의 소설이었다.
196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가와바타는 “아름다운 일본의 나, 그 서문(美しい日本の私)”이라는 수상 강연을 했다. 선(禅)의 시, 와비사비의 미학, 사계절의 감수성. 그는 일본 미의식의 대변인으로서 세계 앞에 섰다. 그러나 그 화려한 무대 뒤에서, 가와바타는 점점 깊은 고독 속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친구 미시마의 충격적인 죽음 이후, 그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1972년 4월, 가와바타는 즈시의 작업실에서 가스관을 입에 물고 생을 마감했다. 유서는 없었다. 아무 말도 남기지 않는 것 — 그것이 그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다자이: 인간 실격의 자화상
1909–1948
쓰시마 슈지 — 필명 다자이 오사무 — 는 아오모리현 가나기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열한 남매 중 열째. 유복한 가정이었지만 아버지는 정치에 바빠 집을 비웠고, 어머니는 병약했으며, 다자이는 주로 하녀에 의해 길러졌다. 부유함 속의 고독, 사랑받지 못한다는 감각. 이 원초적 결핍이 그의 문학의 엔진이었다.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했지만 거의 출석하지 않았다. 대신 술과 여자와 자살 시도로 청춘을 보냈다. 첫 번째 자살 시도는 스무 살 때, 수면제를 대량 복용했으나 실패. 두 번째는 은좌의 바 여급과 함께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여자만 죽고 다자이는 살아남았다. 이 사건으로 자살방조 혐의를 받았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세 번째, 네 번째 시도도 실패했다. 다섯 번째에서 그는 마침내 성공했다.
“부끄러운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人間失格)』 첫 문장
『인간 실격(人間失格)』(1948)은 다자이의 최후의 고백이다. 주인공 오바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릿광대(お道化)’를 연기하며 살아간다. 진짜 자기를 숨기고 남들이 원하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 이 전략은 성공적이었지만, 대가는 자기 자신의 완전한 소멸이었다. 술, 마약, 여자, 자살 미수 — 소설의 줄거리는 다자이 자신의 생애와 거의 일치한다. 자전적 소설이라기보다는 자기 해부라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다자이의 문체는 독특하다. 구어체와 문어체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친밀한 어조를 유지하면서도, 그 아래에 깊은 자기 혐오와 세계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유머와 절망이 한 문장 안에 공존한다. 읽는 사람은 웃다가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까지 사람의 삶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 이 문장이 유머인지 비명인지 독자는 끝내 결정하지 못한다.
그의 또 다른 걸작 『사양(斜陽)』(1947)은 패전 후 몰락하는 귀족 가문의 이야기다. 제목 자체가 ‘지는 해’를 뜻하며, 전후 일본의 구질서가 무너지는 풍경을 한 가족의 해체를 통해 그렸다. 이 소설이 발표된 후 ‘사양족(斜陽族)’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사회적 반향이 컸다. 다자이는 패전의 충격과 가치관의 붕괴를 가장 정직하게 기록한 작가였다.
1948년 6월 13일, 다자이는 애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다마가와 상수에 몸을 던졌다. 서른아홉 살이었다. 그의 시신은 6월 19일 — 공교롭게도 그의 생일이자 일본의 벚꽃이 완전히 진 후의 장마철 — 에 발견되었다. 일본에서는 이날을 ‘오우기(桜桃忌)’, 앵두 기일이라 부르며 지금도 매년 그의 묘 앞에 독자들이 모인다.
미시마: 아름다움과 폭력 사이에서
1925–1970
히라오카 기미타케 — 필명 미시마 유키오 — 는 도쿄 요쓰야에서 관료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유년을 지배한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 나쓰코였다. 귀족 출신의 나쓰코는 손자를 자기 방에 가두다시피 하고, 남자아이들과 놀지 못하게 했으며, 여자아이들의 놀이만 허락했다. 병약한 유년, 억압된 남성성,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이 초기 경험이 미시마라는 작가의 모든 주제를 결정했다.
열여섯 살에 ‘하나자카리노모리(花ざかりの森)’를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학습원 시절의 성적은 압도적이었고, 천황으로부터 은시계를 하사받기도 했다.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대장성(재무부)에 취직했지만, 9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이후 25년간, 그는 일본 문학사에서 가장 화려하고 논쟁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금각사는 불태워져야 한다. 절대적 아름다움은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金閣寺)』
『가면의 고백(仮面の告白)』(1949)은 미시마를 스타 작가로 만든 작품이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부터 ‘정상적인’ 욕망을 연기하며 살아간다.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과 자신의 실제 욕망 사이의 간극. 가면 뒤에 있는 것이 진짜 얼굴인지, 아니면 가면 자체가 얼굴이 된 것인지 — 이 질문은 미시마 문학의 출발점이었다.
『금각사(金閣寺)』(1956)는 1950년 실제로 일어난 금각사 방화 사건을 소재로 한다. 말더듬이 수련승 미조구치는 금각사의 압도적 아름다움에 사로잡힌다. 그 아름다움이 너무 절대적이어서 자신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든다고 느낀다.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없다면 파괴해야 한다. 미시마는 이 실화를 빌려 미(美)와 행위(行為)의 관계, 관조와 실천의 대립이라는 자신의 핵심 주제를 전개했다. 이 소설은 20세기 일본 문학의 정점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960년대 이후 미시마는 점점 더 급진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보디빌딩으로 육체를 단련하고, 검도를 수련했으며, 사설 민병대 ‘방패의 모임(楯の会)’을 조직했다. 문학의 세계에서 행동의 세계로 옮겨가려는 시도였다. 마지막 대작 『풍요의 바다(豊饒の海)』 4부작을 완성한 직후인 1970년 11월 25일, 미시마는 방패의 모임 회원 네 명과 함께 이치가야의 자위대 주둔지를 점거하고 발코니에서 연설한 후 할복했다. 45세였다. 그는 자신의 삶 자체를 하나의 미학적 완결로 만들려 했다. 그것이 옳았는지에 대한 논쟁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계속된다.
세 가지 미학, 하나의 문명
가와바타, 다자이, 미시마는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문학적으로 전혀 다른 방향을 택했다. 가와바타는 지워가는 미학을 추구했다. 말을 줄이고, 사건을 줄이고, 감정의 가장 희미한 결을 포착하는 것. 다자이는 폭로의 미학을 택했다. 자신의 추함, 비겁함, 무능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 미시마는 완성의 미학을 추구했다. 문장의 완벽, 육체의 완벽, 그리고 죽음을 통한 삶의 완벽한 종결.
가와바타
사라지는 아름다움
모노노아와레, 여백의 미학. 말하지 않음으로 말하고, 잡지 않음으로 감동시킨다.
다자이
파괴적 고백
가면과 진심의 혼란, 유머와 절망의 공존. 약함을 숨기지 않는 것이 그의 힘이었다.
미시마
미학적 완결
아름다움과 행동의 일치. 관조만으로는 부족하고, 삶 자체가 작품이 되어야 한다.
세 사람의 관계는 복잡했다. 가와바타는 다자이의 문학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다자이가 한 문학상에 낙선했을 때, 심사위원이었던 가와바타에게 “선생님, 나에게 상을 주십시오”라는 절박한 편지를 보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반면 미시마는 가와바타를 스승처럼 존경했고, 가와바타 역시 미시마의 재능을 인정했다. 미시마는 다자이를 경멸했다. 한 좌담회에서 “다자이 씨의 문학이 싫습니다”라고 직접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자이가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약한 인간’의 모습은 미시마가 가장 강하게 거부했던 자기 자신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전후 일본을 향한 태도도 달랐다. 가와바타는 전통적 일본의 아름다움을 지키려 했다. 서양화되어가는 일본에서 벚꽃과 눈과 온천과 기모노의 세계를 문학으로 보존하려 한 것이다. 다자이는 전후의 혼란 자체를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가치관의 붕괴, 구질서의 소멸, 새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표류. 미시마는 서양화를 거부하고 일본의 전통적 가치 — 무사도, 천황, 육체적 행동의 숭고함 — 로 돌아가려 했다. 세 사람 모두 일본의 미래를 걱정했지만, 그 걱정의 방향은 정반대였다.
가와바타는 사라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다자이는 부서지는 것의 진실을 보았으며, 미시마는 불타는 것의 숭고함을 보았다. 셋이 합쳐지면 일본 문학의 완전한 초상이 된다.
— 세 작가의 교차점
그들이 남긴 것
세 사람 모두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자이는 서른아홉에, 미시마는 마흔다섯에, 가와바타는 일흔둘에. 그러나 그들의 문학은 일본을 넘어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가와바타의 『설국』과 『산소리(山の音)』는 일본어가 도달할 수 있는 감각의 극한을 보여주었다. 다자이의 『인간 실격』은 발표 후 70년이 넘은 지금도 일본에서 매년 10만 부 이상 팔린다. 미시마의 『금각사』는 세계 문학의 고전이 되었고, 노벨상 후보에 세 번이나 오르며 가와바타보다 먼저 받았을 수도 있었다 — 실제로 1968년 노벨위원회에서는 가와바타와 미시마를 함께 검토했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날 일본을 방문하는 독자들은 가와바타가 걸었던 이즈 반도의 길을 걷고, 다자이가 태어난 아오모리의 사양관(斜陽館)을 찾으며, 미시마가 마지막 연설을 했던 이치가야 주둔지를 올려다본다. 세 사람의 문학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자기 이해 —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 패배를 받아들이는 방식, 극단을 향한 충동 — 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가와바타는 침묵으로 떠났다. 다자이는 물속으로 떠났다. 미시마는 칼끝으로 떠났다. 세 사람의 마지막 순간조차 그들의 문학을 닮아 있다. 그리고 그 문학은 아직 살아 있다 — 일본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도, 번역으로만 만나는 사람에게도, 이 세 작가의 문장은 여전히 날카롭게 살아 있다.
대표작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雪国, 1935–47), 이즈의 무희(伊豆の踊子, 1926), 산소리(山の音, 1954), 천우학(千羽鶴, 1952), 고도(古都, 1962)
-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人間失格, 1948), 사양(斜陽, 1947), 달려라 메로스(走れメロス, 1940), 비용의 아내(ヴィヨンの妻, 1947), 쓰가루(津軽, 1944)
-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金閣寺, 1956), 가면의 고백(仮面の告白, 1949), 풍요의 바다 4부작(豊饒の海, 1965–70), 우국(憂国, 1961), 잔연(宴のあと, 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