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1월 4일, 윌프레드 오언은 프랑스 삼브르-우아즈 운하를 건너려다 기관총에 맞아 전사했다. 일주일 뒤, 영국 전역의 교회 종이 일제히 울렸다. 종전이었다. 오언의 어머니는 그 종소리 속에서 아들의 전사 통보를 받았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 손에는 아직 출판되지 않은 시 원고 다발이 남아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은 근대 문명이 처음 만난 산업화된 살육이었다. 기관총, 독가스, 포격, 참호 — 이 전쟁은 영웅담이 어울리지 않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많은 시인들은 나팔 소리처럼 힘차게 붓을 들었다. 루퍼트 브루크가 그랬다. 그리고 전쟁의 실상을 목격한 지그프리드 새순과 윌프레드 오언은, 그 나팔 소리가 얼마나 거짓인지를 시로 증언했다. 이 세 시인은 같은 전쟁을 살았지만, 전혀 다른 전쟁을 보았다.
루퍼트 브루크 — 전쟁을 보기 전에 쓴 전쟁시
1887–1915
루퍼트 브루크는 케임브리지 대학 킹스 칼리지 출신으로,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이미 영국 문단의 촉망받는 신성이었다. 그는 잘생기고 재치 있었으며, W. B. 예이츠가 “영국에서 가장 잘생긴 청년”이라고 묘사했다. 1914년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해군 장교로 자원입대했다. 그리고 갈리폴리로 출발하는 배 위에서, 아직 전투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그의 가장 유명한 시를 완성했다.
“If I should die, think only this of me: / That there’s some corner of a foreign field / That is for ever England.”
— 루퍼트 브루크, ‘The Soldier’ (1914)
‘The Soldier’는 전사를 아름다운 희생으로 그렸다. 이역의 땅에 묻힌 병사의 몸이 그 땅을 영원히 영국의 것으로 만든다는 이 시는, 전쟁 초기 영국인들이 원하던 바로 그 감정을 담았다. 시는 즉각 인기를 끌었고, 브루크는 전쟁 세대의 낭만적 상징이 되었다. 윈스턴 처칠은 그의 부고를 직접 썼다.
그러나 브루크는 1915년 4월, 갈리폴리 해안에 발도 딛기 전에 죽었다. 에게해를 항해하던 중 모기에 물려 패혈증이 생겼고, 프랑스 병원선에서 스물일곱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스 스키로스 섬에 묻혔다. 역설이 있다. 전쟁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죽은 그의 시는 전쟁을 이상화했고, 그 이상이 수십만 명의 청년을 참호로 이끌었다. 오언과 새순이 평생 싸워야 했던 것은 바로 그 이미지였다.
지그프리드 새순 — 훈장을 바다에 던진 시인
1886–1967
지그프리드 새순은 용감한 병사였다. 그는 “미친 잭(Mad Jack)”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독일 참호 안으로 혼자 뛰어들어 적군을 쫓아내고, 부상당한 부하를 등에 업고 귀환하는 등의 전공으로 군사훈장(Military Cross)을 받았다. 그리고 1917년, 그 훈장 리본을 솔웨이 만의 바다에 던져버렸다.
새순은 전쟁 자체에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전쟁을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취하는 후방의 정치인들에게 분노했다. 그해 발표한 성명 “병사의 선언 (A Soldier’s Declaration)”은 명백한 반역에 가까운 문서였다. “이 전쟁은 방어적으로 시작했지만 침략과 정복의 전쟁이 되었다.” 군법회의에 회부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당국은 그를 신경쇠약으로 처리하고 스코틀랜드 크레이글록하트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You smug-faced crowds with kindling eye / Who cheer when soldier lads march by, / Sneak home and pray you’ll never know / The hell where youth and laughter go.”
— 새순, ‘Suicide in the Trenches’ (1918)
크레이글록하트에서 새순은 윌프레드 오언을 만났다. 이 만남이 영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우연 중 하나가 된다. 당시 오언은 무명의 이십대 시인으로, 새순을 존경하며 떨리는 손으로 시를 들고 찾아왔다. 새순은 오언의 시를 읽고 그 재능을 즉각 알아보았다. 오언에게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쓰라고 조언했다. “당신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날 것으로 쓰라”고. 오언의 가장 훌륭한 시들은 그 이후에 나왔다.
새순은 전쟁에서 살아남아 1967년까지 살았다. 그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는, 그가 쓴 시와 비교하면 아이러니하다. 그의 시는 분노와 냉소로 가득하지만 — “영광이여, 영광, 그 지긋지긋한 영광이여” — 그는 마지막에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조용하게 죽었다. 전쟁의 분노는 어디 갔는가. 어쩌면 그것이 시 안에 영원히 남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윌프레드 오언 — 달콤하지도, 영예롭지도 않게
1893–1918
“Dulce et decorum est pro patria mori.”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은 달콤하고 영예롭다 — 호라티우스의 이 라틴어 문구는 수천 년간 전사들을 고무하는 문장으로 쓰였다. 오언은 이 문구를 자신의 가장 유명한 시 제목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시 안에서 그것이 “오래되고 거짓된 거짓말 (the old Lie)”이라고 썼다.
“If in some smothering dreams, you too could pace / Behind the wagon that we flung him in, / And watch the white eyes writhing in his face... / My friend, you would not tell with such high zest / To children ardent for some desperate glory, / The old Lie: Dulce et decorum est / Pro patria mori.”
— 오언, ‘Dulce et Decorum Est’ (1917)
이 시는 독가스 공격 장면을 묘사한다. 가스 경보에 마스크를 쓰다가 늦어 죽어가는 동료를 마차에 싣고 가는 장면. 백인(白眼)이 뒤집히고, 피 섞인 거품을 토하며 죽어가는 인간. 오언은 이 장면을 쓰면서 브루크의 우아한 소네트가 얼마나 먼 세계에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참호의 현실은 문학적 수사를 용납하지 않았다.
오언의 시는 분노라기보다 연민에 가깝다. 새순이 냉소적 분노로 쓴다면, 오언은 슬픔으로 쓴다. 그는 죽어가는 병사들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애도한다. ‘Anthem for Doomed Youth’(죽음으로 선고받은 청년들을 위한 찬가)에서 그는 묻는다. 전장에서 죽은 자들에게 누가 조종을 울려주는가. 종 대신 총소리가, 기도 대신 소총 소리가 그 자리를 채운다. 이 시는 오언이 새순과 만난 크레이글록하트에서 쓰였고, 새순이 초고를 직접 편집했다.
오언은 크레이글록하트에서 치료를 받은 뒤 전선으로 돌아가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다. 전쟁의 진실을 증언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1918년 10월, 그는 전투에서 영국 군사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11월 4일, 삼브르-우아즈 운하 도하 작전 중 전사했다. 그의 시집은 새순이 편집해 사후에 출판되었다. 서문에 새순이 썼다: “이 시들은 전쟁에 관한 것이 아니다. 전쟁의 연민에 관한 것이다. 시는 연민 안에 있다.”
같은 전쟁, 세 개의 시선
브루크, 새순, 오언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서사가 보인다. 브루크는 전쟁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썼다. 그래서 그의 시는 아름답고 무구하다. 새순은 전쟁을 알고 난 뒤 분노했다. 그의 시는 날카롭고 냉소적이다. 오언은 전쟁을 알고 난 뒤 슬퍼했다. 그의 시는 진흙과 피 냄새가 나면서도 동시에 가장 깊은 인류애를 품는다.
브루크
이상의 전쟁
참호 밖에서 본 전쟁은 희생과 헌신의 서사였다. 그 이미지가 수백만을 전선으로 이끌었다.
새순
분노의 증언
훈장을 던지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후방의 위선을 시로 쐈다. 살아서 싸웠다.
오언
연민의 언어
죽어가는 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했다. 죽어서도 싸웠다. 그의 시는 그가 없는 자리에서 출판되었다.
세 사람은 서로를 알고 있었다. 새순은 브루크의 시를 읽으며 전쟁에 자원했고, 훗날 그 자신이 브루크가 표상한 전쟁 이미지의 반대편에 서게 되었다. 오언은 새순을 통해 자신의 시를 벼렸다. 브루크가 없었다면 새순의 분노도, 오언의 연민도 그 형태가 달랐을 것이다. 세 사람은 하나의 거대한 대화였다.
브루크는 아름다운 죽음을 상상하며 시를 썼고,
새순은 추악한 전쟁에 분노하며 살아남았으며,
오언은 죽어가는 자들을 애도하다 그들과 함께 죽었다.
— 세 시인이 남긴 것
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전쟁시는 전쟁을 막지 못했다. 오언의 시가 출판된 것은 1920년이었고, 그로부터 19년 뒤에 또 다른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이 시들은 남았고, 읽혔다. 오든은 오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밝혔다. 테드 휴스는 전쟁시의 전통을 자연의 폭력성으로 이어받았다. 히니는 오언을 읽으며 아일랜드의 폭력을 썼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시들이 만들어낸 언어다. “Dulce et decorum est”라는 문구는 이제 반어적으로만 쓰인다. 브루크의 “영원한 영국의 땅”은 낭만적 민족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예로 인용된다. 오언의 “연민이 시다”는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일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이 시들은 전쟁에 관한 시가 아니라, 전쟁 속 인간에 관한 시였다. 그것이 아직도 읽히는 이유다.
오언이 전사한 삼브르-우아즈 운하 근처 오스-레-발렌시엔 묘지에는 지금도 그의 묘비가 있다. 묘비에는 이름과 날짜만 있다. 시는 없다. 시는 이미 세상 안에 풀려나 있었으니까. 새순은 80세를 넘겨 그 모든 것을 지켜봤다. 브루크는 그리스 섬에서 올리브 나무 그늘 아래 잠들어 있다. 세 사람 중 가장 길게 산 새순이 마지막에 말했다. “윌프레드가 살았더라면.”
대표작
루퍼트 브루크
- The Soldier (1914) — 전장에서의 죽음을 이상화한 소네트
- The Old Vicarage, Grantchester (1912) — 그의 문학적 출발점
- 1914 소네트 연작 — 전쟁 직전의 낭만주의
지그프리드 새순
- Suicide in the Trenches (1918) — 참호의 절망을 고발
- A Soldier's Declaration (1917) — 반전 선언문
- Counter-Attack (1918) — 전투 장면의 생생한 묘사
윌프레드 오언
- Dulce et Decorum Est (1917) — 독가스 공격의 충격적 증언
- Anthem for Doomed Youth (1917) — 전장의 죽음에 바치는 비가
- Strange Meeting (1918) — 적군과의 상상 속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