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언제부터 별을 세지 않게 되었는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C.S. 루이스, 미하엘 엔데 — 이 세 작가는 아동문학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어쩌면 그 어떤 성인 소설보다 더 날카로운 질문들을 품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왜 어른이 그토록 바쁜지 이해하지 못했고, 나니아의 문은 어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옷장 뒤에 있었으며, 모모는 시간을 훔치는 회색 신사들의 정체를 혼자서 알아챘다.
이 세 작품이 지금도 읽히는 이유는 단지 아름다운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들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잃는 것인지를 — 조용하지만 정확하게 — 기록했다. 그리고 그 상실이 불가피한 것인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사막에서 온 편지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1944년 7월 31일, 생텍쥐페리는 지중해 상공에서 정찰 임무 중 실종되었다. 향년 44세. 그보다 1년 전에 출판된 『어린 왕자』는 이미 그가 쓴 작별 인사였는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의 화자는 추락한 조종사다 — 마치 생텍쥐페리 자신처럼. 사막 한가운데, 혼자, 죽음에 가까이 선 자가 만난 존재가 소행성 B-612에서 온 어린 왕자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오직 마음으로만 볼 수 있지.”
—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남긴 비밀
어린 왕자는 여행 중 여섯 개의 소행성을 방문한다. 거기에는 왕, 허영심 많은 사람, 술꾼, 사업가, 가로등 켜는 사람, 지리학자가 산다. 이 어른들은 웃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공허하다. 왕은 아무도 없는 왕국에서 명령을 내리고, 사업가는 누구도 쓰지 못할 별을 ‘소유’한다. 생텍쥐페리가 비판하는 것은 어른의 악함이 아니라 어른의 자기망각이다. 그들은 바쁘고, 진지하며, 철저히 쓸모없다.
그러나 생텍쥐페리는 단순히 어른을 조롱하지 않는다. 그는 조종사였다 — 실제로 하늘을 날고, 우편을 운반하고, 전쟁에서 싸웠다. 그의 삶은 아름다움만으로 지탱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어린 왕자』는 더 슬프다. 어린 왕자는 결국 자기 별로 돌아가야 하고, 그 귀환은 죽음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의 감수성과 어른으로서의 현실 — 두 세계는 공존하기 어렵다. 그 불가능한 거리를 생텍쥐페리는 사막의 황혼처럼 아름답게 그려냈다.
2004년, 그의 비행기 잔해가 마르세유 앞바다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2008년, 한 전직 독일 공군 조종사가 고백했다. “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그였다면 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책을 읽었었으니까.” 적이 자신을 못 죽이겠다고 고백하게 만드는 작가 — 생텍쥐페리가 지킨 세계는 그런 것이었다.
옷장 뒤의 신학 — C.S. 루이스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는 아일랜드 벨파스트 태생으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문학을 가르친 학자였다. 그는 대단히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그를 기독교 변증가로 만들었다. 그는 신앙을 감성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논리의 끝에서 마주쳤다고 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당신은 너무 나이가 들어서 동화를 읽기에는 너무 젊다. 어른이 되면 다시 동화로 돌아오게 된다.”
— C.S. 루이스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1950)에서 옷장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다. 루이스는 경이감(wonder)을 신학적 개념으로 보았다. 우리가 무언가를 ‘아름답다’, ‘신성하다’고 느끼는 감각 — 그것이 다른 세계, 더 실재하는 세계로 통하는 문이라는 것이다. 나니아는 그 문이 실제로 열린 공간이다. 루이스가 나니아 이야기에서 알레고리를 의도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지만, 아슬란이 죽고 부활하는 장면은 아이들에게 그 어떤 신학 교재보다 깊은 인상을 남겼다.
루이스 자신은 어린 시절 ‘기쁨(Joy)’이라고 부른 경험을 여러 번 했다. 형이 꿰맨 이끼로 뒤덮인 장난감 정원을 보는 순간, 갑자기 밀려드는 강렬한 그리움과 아름다움의 감각 —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그는 평생 탐구했다. 『예기치 못한 기쁨』(자서전)에서 그 여정을 기록했고, 나니아는 그 탐구의 문학적 결실이다. 어린 독자가 아슬란의 이름을 처음 들을 때 느끼는 이유 모를 설렘 — 그것이 루이스가 심으려 했던 씨앗이다.
루이스는 동시에 자기만족에 대한 예리한 비판가였다. 나니아에서 비극의 씨앗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최우선으로 놓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에드먼드는 터키 과자 때문에 형제를 팔았고, 드리니안 항해의 말미에 등장하는 우성주의자 리피치프는 세상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루이스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은 세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은 역설적으로 자기를 잊을 때 열린다는 것이었다.
시간을 되찾은 아이 — 미하엘 엔데
1973년, 서독의 한 작가가 동화를 발표했다. 제목은 『모모』. 표지에는 헝클어진 머리의 작은 소녀가 그려져 있었다. 출판사는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이 책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절판된 적이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미하엘 엔데가 1973년에 쓴 ‘시간 절약’에 대한 우화가, 오늘날 더욱 정확하게 현실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삶이다. 삶은 심장 속에 깃든다. 그것을 절약하면 절약할수록, 당신의 삶은 더 적어진다.”
— 미하엘 엔데, 『모모』
회색 신사들은 담배 연기로 존재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접근해 속삭인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시간을 절약하세요. 효율적으로 사세요.” 설득당한 사람들은 이발사에서 사업가로, 어머니에서 관리자로 변해간다. 더 빨라지고 더 바빠지지만, 이상하게도 삶은 더 공허해진다. 엔데는 이것을 시간 절도라고 부른다. 정작 훔쳐지는 것은 달력의 시간이 아니라, 현재 순간에 완전히 존재하는 능력이다.
모모는 특별한 재주가 없다. 달릴 수도, 싸울 수도 없다. 그녀가 가진 것은 오직 하나 — 듣는 능력이다. 모모와 함께 있으면, 사람들은 스스로도 몰랐던 말을 하게 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오래된 꿈이 되살아나며,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가 풀린다. 엔데가 그린 가장 강력한 저항은 효율이 아니라 경청이다. 현재에 완전히 존재하는 것, 그것이 회색 신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엔데의 또 다른 걸작 『끝없는 이야기』(1979)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독자인 바스티안은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 구원자가 된다. ‘판타지엔’이 무너지는 것은 인간이 꿈꾸기를 멈추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창조하는 힘이다 — 엔데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체력이나 호기심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 능력이다.
어린이에게 쓴 어른들의 고백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본질을 보는 눈
어른은 숫자를 보고, 아이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본다. 잃어버린 시각이 아니라 잊어버린 시각 — 그것을 되찾는 것이 가능한지를 묻는다.
C.S. 루이스
경이감과 그 원천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창이다. 나니아는 그 창이 실제로 열린 공간이며, 이야기는 독자에게 그 창을 열어 보여주는 행위다.
미하엘 엔데
시간과 상상력
효율이 삶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운다. 현재 순간에 완전히 있는 것, 꿈꾸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저항이며 창조다.
세 작가를 나란히 놓으면 공통된 적이 선명해진다. 그것은 악이 아니라 무감각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른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지루한 사람이고, 루이스의 나쁜 마녀조차 근본적으로는 자기만족에 갇힌 존재이며, 엔데의 회색 신사들은 악의가 없다 — 그들은 단지 시간을 ‘최적화’하고 있을 뿐이다. 세 작가가 두려워한 것은 인간이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점점 작아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 어린이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어린 왕자, 루시, 모모 — 이 아이들이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이유는 순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아직 ‘중요한 것’과 ‘쓸모 있는 것’을 혼동하지 않는다. 존재 자체가 가치라는 것을 아는 존재들이다.
이 세 작가가 아동문학을 선택한 것이 우연이 아닐 수 있다. 어른을 위한 소설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성인 독자는 알레고리를 분석하고, 주제를 해석하고, 거리를 두려 한다. 아이는 그냥 옷장 속으로 들어간다. 세 작가가 지키려 했던 세계는 그 거리 없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을 필요로 했다.
생텍쥐페리가 사막에서 추락한 뒤에도 어린 왕자는 별마다 웃고 있다. 루이스가 세상을 떠난 날은 케네디 암살 하루 전이라 뉴스에 묻혔지만, 나니아의 문은 닫히지 않았다. 엔데는 회색 신사들이 더욱 강해진 세계에서 살다 갔고, 모모는 여전히 폐허 원형극장에서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 세 사람이 만든 왕국은 지도에 없다. 그래서 사라지지 않는다.
어른이 다시 읽어야 할 세 권
『어린 왕자』(1943)
두 시간이면 읽힌다. 하지만 그 두 시간 뒤에는 당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1950)
나니아 연대기 중 가장 좋은 입문. 경이감이 무엇인지 설명이 아닌 경험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모모』(1973)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읽기를 권한다. 회색 신사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느낄 수 있다.
핵심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