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은 계산될 수 있는가. 옳고 그름을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인류는 더 합리적인 세상을 설계할 수 있을까. 공리주의는 그 가능성을 믿은 철학이었다. 쾌락에서 고통을 뺀 값을 극대화하라 — 이 단순한 공식 하나가 법률을 바꾸고, 복지 국가를 설계하고, 오늘날 동물권 운동과 효율적 이타주의의 씨앗이 되었다.
세 사람이 이 공식을 물려받아 각자의 방식으로 확장했다. 제러미 벤담은 쾌락을 처음으로 측정하려 했고, 존 스튜어트 밀은 쾌락에 품질의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며 공리주의를 구해냈으며, 피터 싱어는 그 원을 지구상의 모든 고통받는 존재로 넓혔다. 같은 출발점에서 전혀 다른 곳으로 나아간 세 방정식이다.
세 사상가의 생애
제러미 벤담 (1748–1832) · 런던 출생 · 법학자·철학자 ·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론』(1789) · 공리주의의 창시자
존 스튜어트 밀 (1806–1873) · 런던 출생 · 철학자·경제학자 · 『공리주의』(1863) · 『자유론』(1859) · 벤담의 계승자이자 비판자
피터 싱어 (1946–) · 멜버른 출생 · 생명윤리학자 · 『동물 해방』(1975) · 『삶과 죽음』(1994) · 현대 효율적 이타주의의 설계자
제1방정식: 쾌락을 계산하라
1748–1832
1789년, 제러미 벤담은 역사상 가장 야심 찬 도덕 공식을 발표했다. ‘쾌락 계산법(felicific calculus)’ — 쾌락의 강도, 지속 시간, 확실성, 근접성, 다산성, 순수성, 범위를 수치화하여 어떤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신이나 전통이 아니라, 수치가 옳고 그름을 말한다.
“자연은 인류를 두 주인, 고통과 쾌락의 지배 아래 두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정하는 것도, 원인과 결과의 사슬을 결정하는 것도 오직 고통과 쾌락만이 할 수 있다.”— 제러미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론』 (1789)
벤담의 공리주의는 철저히 민주적이었다. 왕의 쾌락도 거지의 쾌락도 동등하게 계산된다. 귀족의 고통도 농부의 고통도 같은 무게로 더해진다. 이 논리는 당시 영국 법체계의 야만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경범죄에도 사형이 선고되고, 감옥은 개혁의 의지 없이 범죄자를 방치하는 시대였다. 벤담은 형벌이란 범죄 억제에 필요한 최소한의 고통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법 개혁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놓았다.
그는 또한 ‘파놉티콘(Panopticon)’이라는 교도소 설계를 제안했다. 중앙의 감시탑에서 모든 죄수를 관찰할 수 있되, 죄수는 감시받는지를 알 수 없는 구조. 죄수 스스로 항상 감시받는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비용을 줄이면서도 효율적인 교화가 가능하다는 계산이었다. 이 설계는 결국 채택되지 않았지만, 미셸 푸코는 이 개념을 현대 권력의 작동 방식을 분석하는 핵심 열쇠로 사용했다.
지금도 런던 대학교에 앉아 있는 사람
벤담은 죽기 전에 기이한 유언을 남겼다. 자신의 시신을 해부학 연구에 쓰되, 뼈대는 밀랍 두상과 함께 보관해 ‘오토아이콘(Auto-Icon)’으로 전시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복도 끝 유리 상자 안에 앉아 있다. 일설에 따르면 UCL의 연례 이사회 회의록에는 “제러미 벤담 — 참석, 투표는 불가(present but not voting)”라고 기록된다고 한다. 몸으로 계속 세상에 ‘현존’하겠다는 의지는, 어쩌면 그의 공리주의가 이 세계를 얼마나 진지하게 여겼는지의 방증이다.
제2방정식: 쾌락에도 품질이 있다
1806–1873
벤담이 죽은 해, 존 스튜어트 밀은 스물일곱 살이었다. 그는 세 살부터 그리스어를 배웠고, 여덟 살에 라틴어를 독학했으며, 열두 살에 논리학을 마쳤다. 벤담의 친구이자 제자인 아버지 제임스 밀이 설계한 초인적 교육 프로그램의 산물. 그러나 스무 살, 밀은 신경쇠약으로 쓰러졌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실현된다 해도 행복할 수 있을까’ — 그 질문 앞에서 그는 ‘아니오’라고 느꼈고, 그 위기가 그를 더 깊은 철학자로 만들었다.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1863)
밀이 스승 벤담과 갈라선 지점이 여기다. 벤담에게 쾌락의 차이는 양적인 것, 강도와 지속 시간의 문제였다. 밀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핀을 밀어 놓는 놀이(pushpin)와 시(詩)는 주는 쾌락의 양이 같아도 질이 다르다. 두 종류의 쾌락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라면 분명 후자를 선택한다는 것, 그것이 ‘고등 쾌락’과 ‘하등 쾌락’의 구분이었다.
밀의 또 다른 공헌은 공리주의와 자유주의를 접목한 것이다. 『자유론』에서 그는 ‘해악 원리(harm principle)’를 제시했다.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뿐이다. 취향, 신념, 생활 방식의 차이는 간섭의 대상이 아니다. 이 원리는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기둥이 되었다. 동성애 비범죄화 논쟁에서부터 마약 정책 토론까지, 밀의 해악 원리는 지금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철학적 준거 중 하나다.
해리엇 테일러 — 평생의 공동 저자
밀은 유부녀였던 해리엇 테일러를 20여 년간 플라토닉한 관계로 사랑했고, 그녀가 과부가 된 직후 결혼했다. 밀은 자신의 저작 상당 부분이 해리엇과의 대화에서 비롯되었다고 고백했고, 『자유론』은 그녀와 함께 쓴 작품이라고 밝혔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여성의 지적 기여를 이처럼 공개적으로 인정한 철학자는 드물었다. 밀은 의회에서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공식 제안한 의원이기도 하다. 그에게 공리주의는 탁상의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해야 할 원리였다.
제3방정식: 원을 끝까지 넓혀라
1946–
1972년, 피터 싱어는 『기근, 풍요, 도덕』이라는 짧은 논문에서 독자들을 불편한 자리로 끌어당겼다. 당신이 연못 옆을 걸어가다 어린아이가 익사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비싼 구두를 버리게 되더라도 뛰어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는 아이를 구할 수 있는 돈을 사치품에 쓰는 것은 왜 다른가?
“만약 우리가 나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힘이 있고, 그렇게 해도 그에 비교될 만한 도덕적으로 중요한 것을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것을 해야 한다.”— 피터 싱어, 『기근, 풍요, 도덕』 (1972)
싱어는 공리주의의 핵심 — 고통을 줄이고 쾌락을 극대화하라 — 을 받아들이되, 그 적용 범위를 인류에서 모든 감각 있는 존재로 확장했다.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면, 그 고통은 동등하게 계산되어야 한다. 종의 차이는 피부색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도덕적 고려에서 제외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종 차별주의(speciesism)’라는 개념은 이렇게 탄생했다.
싱어의 논리는 불편하다. 그것이 의도다. 그는 도덕철학이 우리를 편하게 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을 직시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현재 세계에서 10억 명 이상이 극빈층에서 살아가는 동안,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이 사치품에 돈을 쓰는 것은 익사하는 아이를 옆에 두고 비싼 신발을 아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 운동은 이 논리에서 자라났다.
자신의 소득 10%를 기부하는 철학자
싱어는 자신의 주장을 삶으로 실천한다. 그는 소득의 10% 이상을 효과적인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공개적으로 이를 밝혀왔다. ‘기부 서약(Giving What We Can)’ 운동을 통해 수천 명이 비슷한 서약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치매를 앓던 노모를 위해 고비용 치료를 선택했을 때, 비판자들은 위선이라고 지적했다. 싱어의 대답은 솔직했다. “나는 철학자로서 가장 합리적인 원리를 논증하지만, 아들로서 나는 그것을 완전히 지키지 못한다.” 이 고백은 그를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한계와 인간의 조건을 동시에 보여준다.
세 방정식을 나란히 풀면
벤담은 도덕을 측정 가능한 수치로 만들어 법 개혁의 언어를 제공했고, 밀은 공리주의를 질적 깊이와 자유의 원리로 풍부하게 만들었으며, 싱어는 그 계산의 대상을 인류 너머, 고통받는 모든 존재로 확장했다. 같은 공식이 어떻게 세 개의 전혀 다른 세계를 열어냈는지가 공리주의의 역설이다.
제러미 벤담
1748–1832
쾌락 계산법 · 최대 다수
도덕을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고통과 쾌락을 측정 가능한 양으로 정의하고, 행복의 총합을 극대화하는 행위가 옳다. 도덕의 민주화를 시도했다.
존 스튜어트 밀
1806–1873
고등 쾌락 · 해악 원리
쾌락에는 품질의 차이가 없는가?
양뿐 아니라 질이 다른 쾌락이 있다. 자유 없이는 고등 쾌락도 없다. 공리주의와 자유주의를 융합했다.
피터 싱어
1946–
종 차별주의 · 효율적 이타주의
도덕적 고려의 원은 어디서 끝나는가?
고통받을 능력이 도덕적 고려의 기준이다. 인간과 동물, 먼 곳의 타인까지 원을 넓힐 때 진정한 공리주의가 완성된다.
| 구분 | 벤담 | 밀 | 싱어 |
|---|---|---|---|
| 쾌락의 기준 | 양적 차이만 존재 | 양적+질적 차이 모두 존재 | 고통 감수 능력이 기준 |
| 도덕적 주체 | 모든 인간 (평등하게) | 이성적 자유인 우선 | 모든 감각 있는 존재 |
| 핵심 개념 | 쾌락 계산법·파놉티콘 | 해악 원리·고등 쾌락 | 종 차별주의·익사 논증 |
| 실천적 관심 | 법 개혁·형벌 체계 | 자유·민주주의 제도 | 동물권·글로벌 빈곤 |
| 비판 받은 점 | 계산 불가능성 문제 | 고등 쾌락의 엘리트주의 | 요구 수준이 너무 높다 |
공리주의의 낡지 않는 딜레마
트롤리 문제(trolley problem) —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희생시킬 수 있는가 — 는 지금도 공리주의가 직면하는 가장 날카로운 반론을 압축한다. 행복의 총합만을 계산한다면 분명 다수를 살려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옳다’고 느끼지 못한다. 벤담은 계산의 공정성을, 밀은 개인의 권리를, 싱어는 결과의 총량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 딜레마 앞에 세운다. 어느 하나도 완벽한 답이 아니라는 사실이 공리주의를 아직도 살아 있는 논쟁으로 만든다.
방정식이 다하지 못하는 것
세 사람이 공유하는 믿음은 하나다. 도덕은 직관이나 관습이 아니라, 논증과 계산으로 검토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 믿음은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동물 복지 입법, 글로벌 원조 의무 논쟁에서 모두 이용되었다. 어떤 편견이 ‘당연한 것’으로 통용될 때, 그것을 수식 앞에 놓으면 그 자명함이 흔들린다.
그러나 공리주의는 스스로의 한계도 솔직히 드러낸다. 행복은 측정될 수 있는가. 누구의 행복을 어떻게 비교하는가. 소수를 희생하는 다수결이 정의인가. 이 질문들은 벤담 이후 250년이 지나도록 해소되지 않았다. 그것은 공리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도덕 자체의 복잡성이다.
어쩌면 공리주의의 진짜 공헌은 완벽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묻고 무엇을 세어야 하는지를 가르친 것이다. 계산이 끝나지 않는다고 해서 계산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벤담은 도덕을 수치로 만들었고, 밀은 그 수치 안에 자유와 품질을 새겨 넣었으며, 싱어는 그 계산의 대상이 어디서 멈춰서는 안 되는지를 물었다. 세 방정식은 서로 완성하고 서로 부정한다. 그리고 그 긴장 속에서 도덕철학은 계속 살아 움직인다.
— 공리주의의 세 계보
처음 읽을 책 세 권
『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1863년. 얇고 명쾌하다. 벤담과의 차이, 고등 쾌락, 정의와 공리의 관계까지 한 권으로 입문할 수 있다
『동물 해방』
피터 싱어
1975년. 읽기 전과 후가 다른 책. 공리주의가 실제로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1859년. 해악 원리가 처음 등장하는 고전.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권력 사이의 경계를 논하는 가장 날카로운 텍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