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철학은 남성의 언어로 씌어졌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칸트의 강의실에서, 헤겔의 체계 안에서 — 인간을 사유하는 자리에 여성은 드물게만 초대받았다. 그러나 세 여성은 초대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벽을 두드렸고, 부수었고, 그 자리에 자신들의 사유로 새 건물을 세웠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시몬 드 보부아르, 한나 아렌트.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세기를 살았고,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으며, 다른 문제와 싸웠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여성의 경험을 통해 답하려 했다는 것. 그 경험은 예외가 아니라 인류의 절반이 살아온 보편이었다.
세 사상가의 생애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1759–1797) · 런던 출생 · 작가·철학자 · 『여성의 권리 옹호』(1792) · 38세로 요절
시몬 드 보부아르 (1908–1986) · 파리 출생 · 실존주의 철학자·소설가 · 『제2의 성』(1949) · 사르트르와 평생의 동반자
한나 아렌트 (1906–1975) · 하노버 출생 · 정치철학자 · 『전체주의의 기원』(1951) · 『인간의 조건』(1958) · 유대계 망명 지식인
울스턴크래프트: 이성은 성별을 모른다
1759–1797
1792년, 런던에서 출판된 얇은 책 한 권이 잉글랜드 사교계를 발칵 뒤집었다. 제목은 『여성의 권리 옹호(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 저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32세의 작가였다. 그녀가 제기한 논지는 당시로서는 도발적일 만큼 단순했다. 여성이 이성적이지 못한 것은 타고난 열등함 때문이 아니라, 이성을 발전시킬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라는 것.
“여성을 무지 속에 가두어놓고 그것을 덕이라 부른다면, 그 덕은 덕이 아니라 복종이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성의 권리 옹호』 (1792)
울스턴크래프트는 루소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루소는 『에밀』에서 여성 교육이란 남성을 기쁘게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썼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이것이 여성을 어린아이로 영구히 묶어두는 처방이라고 보았다. 계몽의 논리를 그 논리 자체로 뒤집은 것이다. 만약 이성이 인간의 존엄을 정당화한다면, 이성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그 존엄이 주어져야 한다. 성별은 이 논리 밖에 있을 수 없다.
그녀의 삶은 그녀의 철학과 긴장 속에 놓여 있었다. 두 번의 연애, 혼외 임신, 두 번의 자살 시도 — 이 모든 것이 38세의 짧은 생애 안에 압축되어 있었다. 그녀는 딸을 낳다 산후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딸은 훗날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가 된다. 어머니가 심은 씨앗이 딸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꽃피었다.
루소의 책을 불태우고 싶었던 여자
울스턴크래프트는 루소의 저작을 탐독하며 그와 논쟁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사유를 키웠다고 알려진다. 『에밀』에서 여성 교육을 논한 부분에 이르러 그녀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 분노가 『여성의 권리 옹호』를 낳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반박한 루소는 그녀에게 글쓰기의 힘을 가르친 스승이기도 했다. 비판은 종종 가장 깊은 이해에서 온다.
보부아르: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1908–1986
1949년 출판된 『제2의 성(Le Deuxième Sexe)』은 철학의 역사를 두 시기로 나눈다. ‘여성이 철학의 주체가 되기 전’과 ‘후’. 보부아르가 이 책에서 던진 질문은 단 하나였지만, 그 질문은 모든 것을 바꿨다. “여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녀의 대답은 철학의 언어로 단호했다. 여성은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문화적 구성물이라고.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되는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1949)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가져와 여성 문제에 접합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면, 여성성이라는 ‘본질’도 사후에 구성된 것이다. 남성이 인류의 기준이 되고 여성은 그 ‘타자(Other)’로 규정되는 방식, 여성이 스스로 그 타자성을 내면화하는 과정 — 보부아르는 이 메커니즘을 수백 페이지에 걸쳐 인류학·생물학·역사·문학을 넘나들며 해부했다.
그러나 보부아르를 단순히 페미니즘의 선구자로만 읽는 것은 그녀를 좁히는 일이다. 그녀는 먼저 실존주의 철학자였다. ‘자유’와 ‘책임’이라는 실존주의의 핵심 개념을 여성의 경험이라는 구체적 조건 속에서 검증했을 때, 그 개념들이 얼마나 추상적으로 남성 주체를 전제했는지가 드러났다. 보부아르의 공헌은 철학의 보편성이 실제로는 편향적이었음을 내부로부터 폭로한 것이다.
사르트르에게 보낸 편지의 비밀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결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필수적 관계’와 ‘우연적 관계’를 구분하며 서로에게 다른 연인들을 허용하는 계약 관계를 맺었다.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에게 보낸 수천 통의 편지가 그녀 사후 공개되었을 때, 세상은 두 가지를 발견했다. 하나는 그 철학적 열정의 깊이였고, 다른 하나는 그 ‘자유로운’ 관계 안에서도 보부아르가 종종 상처 입고 질투했다는 것이었다. 자유를 이론화한 사람도 자유의 무게를 온몸으로 살아야 했다.
아렌트: 사유하지 않는 것이 악이다
1906–1975
한나 아렌트는 페미니스트라고 불리기를 거부했다. 그녀의 관심은 ‘여성 문제’가 아니라 ‘인간 문제’였다. 그러나 그녀야말로 20세기 철학에서 가장 강렬한 여성 사유자의 목소리였다. 유대계로서 나치를 피해 망명하고, 무국적자로서 수십 년을 살며, 그 경험을 철학으로 담금질한 사람. 아렌트의 사유는 전체주의라는 20세기의 재앙을 이해하려는 절박한 시도였다.
“악의 평범성 —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었다. 그는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
1961년, 아렌트는 나치 전쟁범죄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재판을 뉴요커특파원으로 취재했다. 그녀가 본 아이히만은 악마가 아니었다. 자신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유하기를 멈춘 평범한 관료였다. 이 관찰에서 나온 개념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은 철학계와 유대인 사회 양쪽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피해자를 조직한 유대인 위원회의 역할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유대 공동체 일부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아렌트는 굽히지 않았다.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는 인간 활동을 세 층위로 구분했다. 노동(labor) — 생존을 위한 반복, 작업(work) — 세계를 짓는 제작, 그리고 행위(action) — 말과 행동으로 공적 공간에 나타나는 것. 이 중 아렌트가 가장 높이 평가한 것은 행위였다. 인간은 공적 공간에서 서로를 향해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비로소 자유롭고 독특한 존재로 나타난다. 이 공적 공간을 파괴하는 것이 전체주의의 본질이었다.
하이데거에 대한 사랑과 결별
18세의 아렌트는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마르틴 하이데거를 만났다. 두 사람은 비밀 연애를 시작했다.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지적 우상으로 흠모했고, 하이데거는 나치당에 입당한다. 아렌트는 그 배신을 평생 소화해야 했다. 전후 그녀는 하이데거와 화해했지만, 그를 변호하지도 않았다. “그는 위대한 사상가였지만, 당대의 현실에 대해 사유하지 못했다.” 아이히만에 대해 내렸던 진단과 다르지 않았다.
세 사유자를 나란히 놓으면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배제’의 문제를 다루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교육과 이성의 동등한 권리를 요구했다 — 계몽주의의 논리로 계몽주의의 모순을 공격했다. 보부아르는 실존적 자유와 타자성의 구조를 분석했다 — 여성이 어떻게 스스로를 ‘타자’로 내면화하는지를 철학적 언어로 드러냈다. 아렌트는 공적 공간과 사유의 책임을 주장했다 — 정치적 자유는 생각하는 인간들이 함께 만드는 것임을 전체주의의 경험으로부터 역으로 증명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1759–1797
이성의 평등 · 교육권
왜 여성에게는 이성이 없다고 하는가?
여성이 이성적이지 못한 것은 타고난 열등함이 아니라 교육의 박탈 때문이다. 이성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동등한 권리를.
시몬 드 보부아르
1908–1986
타자성 · 제2의 성
여성성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실존주의 철학으로 여성의 타자화 메커니즘을 해부했다.
한나 아렌트
1906–1975
악의 평범성 · 공적 공간
사유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악이 되는가?
평범한 관료가 학살의 도구가 된다. 인간의 자유는 공적 공간에서 함께 사유하고 행동함으로써만 살아남는다.
| 구분 | 울스턴크래프트 | 보부아르 | 아렌트 |
|---|---|---|---|
| 시대 | 18세기 계몽주의 | 20세기 실존주의 | 20세기 전체주의 이후 |
| 핵심 개념 | 이성의 평등권·교육 | 타자성·실존적 자유 | 악의 평범성·공적 공간 |
| 철학적 계보 | 계몽주의 비판적 계승 | 실존주의·현상학 | 독자적 정치철학 |
| 비판 대상 | 성차별적 교육 제도 | 여성의 타자화 구조 | 사유를 포기한 복종 |
| 현대적 영향 | 자유주의 페미니즘 기초 | 젠더 이론·실존 페미니즘 | 전체주의 연구·공화주의 정치 |
공통의 유산: 철학을 살아낸 사람들
세 사람은 모두 자신의 철학을 삶으로 실험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결혼 제도 밖에서 사랑을 살았고,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의 ‘계약적 관계’로 전통적 결혼을 거부했으며, 아렌트는 무국적 망명자로서 국가의 보호 없이 ‘인간의 권리’를 몸으로 배웠다. 그들은 모두 당대의 비난과 오해를 받았다. 그리고 모두, 사후에야 비로소 그 깊이가 온전히 인정받기 시작했다.
벽이 무너진 자리에 남은 것
이 세 사람이 무너뜨린 벽은 단순히 ‘여성의 권리’를 가로막던 벽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가 사유할 자격이 있는가’를 결정하는 벽이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이성이 성별을 모른다는 것을 보였고, 보부아르는 실존이 성별 이전에 온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아렌트는 사유가 권리가 아니라 책임임을 가르쳤다.
오늘날 철학과 강의실에서 여성의 이름이 남성과 나란히 불린다면, 그것은 이 세 사람의 작업이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가장 큰 공헌은 ‘여성 철학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철학 자체를 더 예리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절반의 경험이 빠진 철학은 인류의 절반만을 이해하는 철학이다. 그 공백을 채웠을 때 비로소 인간에 대한 사유는 한 뼘 더 깊어졌다.
세 사람은 모두 당대에 혼자였다. 그러나 그들 각자의 고독한 목소리가 쌓이고 이어지면서, 마침내 그 목소리들은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여성이 아니라 인간 전체가 더 자유로워지는 방향으로 흐르는 전통.
울스턴크래프트는 이성이 성별 위에 있다는 것을 외쳤고, 보부아르는 여성이 어떻게 스스로를 타자로 만드는지를 해부했으며, 아렌트는 사유를 멈추는 것이 곧 악에 동조하는 것임을 증언했다. 셋이 합쳐지면,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답이 된다.
— 세 여성 철학자의 유산
처음 읽을 책 세 권
『여성의 권리 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1792년. 짧고 명쾌하다. 250년이 지났는데도 어떤 구절은 지금 쓰여진 것처럼 읽힌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1949년. 분량이 방대하지만 2부 서론만 읽어도 핵심을 만난다. 젠더론의 원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1963년. 철학 입문서 중 가장 충격적이다. ‘악의 평범성’은 읽기 전과 후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