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이 질문을 품고 살았다. 불, 물, 흙, 공기라는 네 원소부터 연금술사의 용광로까지 —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화학은 오랫동안 신화와 미신의 언어로 이야기되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쳐, 세 명의 과학자가 그 언어를 완전히 바꾸었다. 라부아지에는 불타는 것이 무엇인지를 규명했고, 돌턴은 물질의 최소 단위에 이름을 붙였으며, 멘델레예프는 모든 원소를 하나의 표에 담았다. 이것이 근대 화학의 세 기둥이다.
세 사람은 연대기적으로 배턴을 이어받는다. 라부아지에가 화학의 언어 자체를 새로 정의하자, 돌턴이 그 위에 원자론이라는 구조물을 세웠다. 그리고 원소들이 하나씩 발견되던 시대에 멘델레예프는 그것들을 질서 있는 체계로 묶어냈다. 그러나 세 사람의 방식은 판이하게 달랐다. 한 명은 실험으로, 한 명은 계산으로, 한 명은 직관과 담대한 예언으로 과학의 지형을 바꾸었다.
화학 혁명의 결정적 순간들
앙투안 라부아지에: 화학이라는 언어를 발명한 사람
Antoine Lavoisier
Antoine Lavoisier (1743–1794)
1794년 5월 8일, 앙투안 로랑 드 라부아지에는 단두대에 올랐다. 혁명 재판소의 판결문은 간결했다 — 징세 청부인, 반혁명 죄인. 수학자 라그랑주는 이 소식을 듣고 한탄했다. “그 머리를 베는 데는 한 순간으로 충분하지만, 그런 두뇌가 다시 나타나려면 백 년도 더 걸릴 것이다.” 근대 화학의 아버지는 쉰 한 살에 세상을 떠났다.
라부아지에가 화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독특하다. 그는 새로운 원소를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화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틀을 다시 짰다. 당시 화학자들은 '플로지스톤(phlogiston)'이라는 가상의 물질이 연소를 일으킨다고 믿었다. 무언가 타면 플로지스톤이 방출되고, 그것이 소진되면 연소가 멈춘다는 이론이었다. 라부아지에는 정밀한 저울로 이것을 뒤집었다.
그의 핵심 실험은 단순하면서도 혁명적이었다. 밀폐된 용기에서 금속을 가열하면 무게가 늘어난다. 플로지스톤 이론대로라면 무언가가 빠져나갔으니 가벼워져야 했다. 라부아지에는 반대였다. 금속이 공기 중의 어떤 성분과 결합한 것이다. 그 성분이 바로 산소였다. 1789년 출판된 《화학 원론》은 이 발견을 체계화하는 동시에, 화학 용어 자체를 정리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산소(oxygène), 수소(hydrogène), 탄소(carbone) 같은 이름들이 이 책에서 왔다.
“화학에서 실험은 당신의 주인이다. 이론은 그것을 설명하는 하인에 불과하다. 이 순서가 뒤집히면 과학은 신화가 된다.”
— 앙투안 라부아지에
라부아지에의 또 다른 유산은 ‘질량 보존 법칙’이다. 반응 전후의 물질 총질량은 변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너무 당연하게 들리지만, 이것을 정밀한 실험으로 증명한 것은 라부아지에가 처음이었다. 그는 화학 반응을 방정식으로 표현하는 방식도 도입했다. 물질 세계에 수학의 언어가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단두대가 그 언어의 완성을 막았지만, 이미 충분했다. 화학은 이제 다른 학문이었다.
존 돌턴: 원자에 숫자를 부여한 사람
John Dalton
John Dalton (1766–1844)
존 돌턴은 색맹이었다. 그는 자신이 색을 다르게 본다는 사실을 스물여섯 살이 되어서야 알아챘고, 이를 계기로 색각이상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오늘날 색맹을 ‘달토니즘(Daltonism)’이라 부르는 이유다. 색의 세계에서는 남들보다 적게 본 이 사람이, 물질의 세계에서는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
돌턴은 영국 잉글랜드 북부 컴벌랜드의 퀘이커 교도 가문에서 태어났다.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채 독학으로 수학과 과학을 익혔다. 그의 첫 관심사는 기상학이었다. 구름은 왜 생기는가, 기체는 어떻게 혼합되는가 — 이 질문들을 추적하다가 그는 물질의 근본 구조로 이끌렸다. 1803년, 돌턴은 원자론을 발표했다.
핵심 주장은 세 가지였다. 첫째, 모든 물질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로 이루어진다. 둘째, 같은 원소의 원자는 질량이 동일하고, 서로 다른 원소의 원자는 질량이 다르다. 셋째, 화학 반응은 원자들이 일정한 비율로 결합하거나 분리되는 과정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도 원자를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철학적 상상이었다. 돌턴의 원자는 측정 가능한 수치를 가졌다.
“물질의 궁극적 입자들은 서로 달라서는 안 된다면, 자연의 모든 다양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존 돌턴, 《화학 철학의 신 체계》
돌턴은 수소를 기준값 1로 놓고 각 원소의 상대적 원자량을 계산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부정확한 값들이 많지만, 방향은 옳았다. 화학은 이제 단순한 관찰의 학문이 아니라 계산의 학문이 되었다. 물질의 결합 비율이 항상 정수비를 이룬다는 ‘배수 비례 법칙’도 그의 발견이다. H₂O와 H₂O₂의 차이 — 같은 원소의 조합이지만 비율이 달라 전혀 다른 물질이 탄생한다. 이 단순한 규칙 속에 화학의 거대한 다양성이 숨어 있었다.
말년의 돌턴은 맨체스터 문학철학협회에서 40년 넘게 일하며 강의하고 연구했다. 1844년, 일흔여덟 살의 그는 일지에 마지막 기상 관측 기록을 남긴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단 한 번도 연구를 멈추지 않은 사람다운 마지막이었다. 4만 명이 그의 영구차 행렬을 지켜봤다.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아직 존재하지 않는 원소를 예언한 사람
Dmitri Mendeleev
Dmitri Mendeleev (1834–1907)
1869년 2월,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는 꿈을 꾸었다고 전해진다. 꿈 속에서 모든 원소가 제자리에 배열된 표가 보였다. 잠에서 깬 그는 그 표를 종이에 그렸다. 물론 이 일화는 과장됐을 가능성이 높다 — 멘델레예프 자신은 이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부정하지도, 확인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당시 알려진 63개 원소를 원자량 순으로 늘어놓았을 때 일정한 패턴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그가 누구보다 명확하게 직관했다는 것이다.
멘델레예프의 천재성은 표를 만든 것에 있지 않았다. 빈칸을 남겨둔 것에 있었다. 원자량과 화학적 성질을 기준으로 원소를 배열하다 보면 빈 자리가 생겼다. 다른 과학자들이라면 배열을 조정해 빈자리를 메웠을 것이다. 멘델레예프는 그 빈 자리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가 있을 것이라 선언하고, 그 원소의 원자량과 성질까지 예측했다. 그는 세 원소에 잠정 이름을 붙였다 — 에카붕소, 에카알루미늄, 에카규소.
“원소들의 성질은 그 원자량에 주기적으로 의존한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지, 우연이 아니다.”
—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1871년 논문
6년 뒤인 1875년, 프랑스 화학자 폴 에밀 르코크 드 부아보드랑이 갈륨을 발견했다. 그 성질이 멘델레예프의 예측과 놀랍도록 일치했다. 원자량, 밀도, 녹는점까지. 1879년에는 스칸듐이, 1886년에는 게르마늄이 잇따라 발견되었다 — 모두 예언표 위에 이미 자리가 예약되어 있었다. 과학이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을, 주기율표는 세상에 증명했다.
멘델레예프의 삶에는 아이러니가 있다. 노벨화학상 선정위원회는 1906년 그를 수상자로 지목했지만, 한 표 차이로 다른 후보에게 돌아갔다. 이듬해 멘델레예프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101번 원소에는 그의 이름이 붙었다 — 멘델레븀(Mendelevium). 1955년에 발견된 이 인공 원소는, 반세기 전 그가 그려놓은 표의 가장 먼 끝에 새로운 이름을 추가했다.
세 개의 혁명, 하나의 화학
| 구분 | 앙투안 라부아지에 | 존 돌턴 |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
|---|---|---|---|
| 핵심 방법 | 정밀 실험·저울 | 수치 계산·비례 분석 | 패턴 인식·예언 |
| 핵심 질문 | 연소란 무엇인가? | 물질의 최소 단위는? | 원소들 사이에 질서가 있는가? |
| 주요 업적 | 산소 발견, 질량보존법칙 | 원자론, 배수비례법칙 | 주기율표, 미발견 원소 예언 |
| 대표 저작 | 《화학 원론》(1789) | 《화학 철학의 신 체계》(1808) | 《화학의 원리》(1868–71) |
세 사람의 업적에는 하나의 공통된 구조가 있다. 각자는 이전 사람이 남긴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냈다. 라부아지에가 ‘물질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를 실험으로 밝히자, 돌턴은 ‘그 구성 단위가 어떤 수적 관계를 갖는가’를 물었다. 돌턴이 원자량이라는 수치를 부여하자, 멘델레예프는 ‘그 수치들 사이에 더 큰 질서가 있지 않은가’를 질문했다. 과학의 발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 한 세대의 답이 다음 세대의 질문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세 사람의 삶이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경계’ 위에 서 있었다는 점이다. 라부아지에는 귀족과 과학자의 경계에서 살다가 혁명의 칼날 앞에 섰고, 돌턴은 제도 교육의 바깥에서 독학으로 과학의 핵심에 도달했으며, 멘델레예프는 시베리아 끝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유럽 학계의 경계를 가로질렀다. 화학이라는 학문의 지형 자체가 경계를 무너뜨리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파리의 실험실에서 라부아지에가 저울 눈금을 읽는 동안, 맨체스터의 돌턴은 기체의 압력을 계산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멘델레예프는 카드에 원소 이름을 적어 순서를 맞추고 있었다. 세 개의 방, 세 개의 집착 — 하나의 화학이 세워지는 소리.
더 읽어볼 책
- 라부아지에: 재닛 벌 버그 『라부아지에: 과학의 혁명가』 — 화학 혁명의 드라마를 단두대까지 추적한 평전
- 돌턴: 프랭크 그린어웨이 『존 돌턴과 원자』 — 독학 과학자의 원자론이 탄생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
- 멘델레예프: 폴 스트래던 『멘델레예프의 꿈』 — 원소 발견의 역사를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를 중심으로 엮은 교양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