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에밀 졸라는 에세이 한 편을 발표한다. 제목은 「실험소설론(Le Roman expérimental)」.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 소설가는 과학자여야 한다. 실험실에서 조건을 통제하듯, 인물을 특정 환경에 놓고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관찰해야 한다. 유전과 환경이 인간을 만든다. 도덕이나 자유의지 같은 것은 착각이다. 졸라가 쏘아올린 이 선언이 문학사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었다 — 그 이전까지 소설의 주인공들은 선택하고 투쟁했다. 그 이후 자연주의 소설의 인물들은 관찰되고 분석된다.
자연주의(Naturalism)는 사실주의의 급진적 형제다. 사실주의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면, 자연주의는 그 현실이 왜 그러한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빈곤은 개인의 나태함이 아니라 계급 구조의 산물이다. 알코올 중독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유전과 환경의 결과다. 욕망은 영혼의 타락이 아니라 본능의 작동이다. 이 냉정한 시선으로 인간을 해부한 세 명의 작가 — 프랑스의 에밀 졸라, 미국의 시어도어 드라이저, 영국의 토머스 하디 — 는 각자의 사회에서 금기를 부수며 문학의 영토를 넓혔다.
세 해부학자의 프로필
에밀 졸라 (1840–1902) · 파리 출생 · 루공마카르 연작 20권 — 유전과 환경의 실험실
시어도어 드라이저 (1871–1945) · 인디애나 출생 · 『시스터 캐리』(1900) — 욕망과 계급의 해부자
토머스 하디 (1840–1928) · 도싯셔 출생 · 『테스』(1891) · 『주드』(1895) — 운명의 차가운 관찰자
에밀 졸라: 소설을 실험실로 만든 사람
1840–1902
졸라의 야망은 발자크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발자크가 『인간희극』으로 프랑스 사회의 지도를 그렸다면, 졸라는 그것을 과학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루공마카르(Les Rougon-Macquart)』 연작은 제2제정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가문의 5대에 걸친 이야기다 — 총 20권, 등장인물 300여 명. 각 권은 사회의 다른 단면을 해부한다. 탄광(『제르미날』), 백화점(『여인들의 행복』), 파리 중앙시장(『파리의 배』), 알코올과 빈곤(『목로주점』), 증권 투기(『돈』), 전쟁(『붕괴』). 졸라는 한 사람이 이 모든 주제를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제르미날』(1885)은 졸라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힌다. 탄광 파업을 다룬 이 소설에서 졸라는 계급투쟁을 단순한 선악의 구도로 그리지 않는다. 광부들은 굶주리지만 무력하고, 광산 회사는 탐욕스럽지만 그 역시 더 큰 자본주의 구조의 부품이다.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이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졸라의 목표였다.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그는 북부 탄광 지역에 직접 내려가 광부들과 함께 생활하며 취재했다. 현장 기록이 없으면 소설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나는 사실들을 수집하고, 그 속에 인간을 집어넣어,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관찰한다. 그것이 실험소설이다.”
— 에밀 졸라, 「실험소설론」 (1880)
졸라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1898년 1월 13일이다.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간첩죄로 군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을 때 — 증거는 위조되었고, 진범은 따로 있었다 — 졸라는 신문 『로로르』에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한다. 제목은 「나는 고발한다(J’accuse!)」. 군부와 사법부의 부패를 정면으로 고발한 이 편지로 졸라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었고 영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그러나 드레퓌스는 마침내 무죄를 선고받았다. 소설로 사회를 해부하던 자가, 현실에서도 메스를 들었다.
시어도어 드라이저: 욕망은 죄가 아니다
1871–1945
시어도어 드라이저는 인디애나 테레호트의 가난한 독일계 이민자 가정에서 열두 형제 중 하나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우울하고 엄격했으며, 어머니는 다정했지만 무력했다. 형은 사기꾼이었고, 누이들은 혼전임신과 불륜으로 가족을 곤경에 빠뜨렸다. 훗날 드라이저는 이 가족을 그대로 소설에 옮긴다. 그것이 바로 『시스터 캐리(Sister Carrie)』(1900)다.
열여덟 살 캐리 미버는 시카고로 상경한다. 보잘것없는 공장 일자리, 추운 방, 아픈 몸. 그리고 그녀 앞에 두 남자가 나타난다 — 영업사원 드루에, 그리고 부유한 지배인 허스트우드. 캐리는 욕망과 상황에 이끌려 두 남자와 관계를 맺는다. 이것이 당시 미국 출판계에 충격을 주었다. 캐리는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벌을 받지도 않는다. 오히려 캐리는 성공한다. 반면 허스트우드는 추락한다. 도덕 강의를 거부한 이 소설은 출판사 더블데이의 사장 부인에게 읽힌 후 출판이 사실상 금지되었다. 초판 1,008부 중 판매된 것은 456부뿐이었다.
“우리 중 누가 자신이 아는 것을 행하는가? 우리의 충동이 우리를 끌어당기면, 우리는 따라가거나 저항한다. 그러나 충동 자체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다.”
— 시어도어 드라이저, 『시스터 캐리』 (1900)
드라이저의 자연주의는 졸라보다 더 개인적이다. 졸라가 계급과 유전이라는 거시 구조를 분석했다면, 드라이저는 그 구조 속에서 꿈을 꾸는 개인의 욕망을 더 가까이 들여다본다. 그는 캐리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녀가 원하는 것 — 예쁜 옷, 따뜻한 방, 부유한 삶 — 은 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인간의 욕망이다. 그 욕망을 죄로 규정하는 사회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 시각은 당시로서는 위험했다. 그러나 1907년 영국판이 출판되고 좋은 반응을 얻자, 미국에서도 재출판이 이루어졌고 드라이저는 마침내 인정받기 시작했다.
드라이저의 또 다른 대작 『미국의 비극(An American Tragedy)』(1925)은 실제 살인 사건을 모델로 한다. 야심 찬 청년 클라이드 그리피스는 상류층에 편입되기 위해 임신한 연인을 살해한다 — 혹은 의도하지 않게 사고가 일어난다. 재판과 사형까지의 과정을 통해 드라이저는 묻는다. 이것은 한 개인의 도덕적 실패인가, 아니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화가 만들어낸 필연인가.
토머스 하디: 도싯셔의 땅이 증인이다
1840–1928
토머스 하디는 영국 도싯셔의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고, 농촌을 떠나 런던을 경험한 후 농촌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사람이다. 그의 ‘웨섹스(Wessex)’ — 상상 속 지명이지만 도싯셔를 중심으로 한 실제 지역 — 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인물이다. 땅, 날씨, 계절이 인간의 운명과 함께 움직인다. 하디의 소설에서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공모자다.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1891)는 부제가 “한 순결한 여인의 이야기(A Pure Woman Faithfully Presented)”다. 이 부제 하나가 사회에 폭탄을 던졌다. 강간을 당하고 사생아를 낳은 테스를 “순결한 여인”이라 부르다니. 빅토리아 시대 독자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하디는 물러서지 않았다. 테스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계급과 성(性)이라는 두 개의 쇠창살에 갇혔을 뿐이다. 그녀를 파멸시킨 것은 그녀 자신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구조다.
“그녀는 이 세상이 잔인하다는 것을 알았다. 강자에게는 온화하고, 약자에게는 혹독한 이 세상이.”
— 토머스 하디, 『테스』 (1891)
4년 후 나온 『주드(Jude the Obscure)』(1895)는 하디를 소설에서 완전히 떠나게 만든 작품이다. 가난한 석공 주드 포울리는 학자의 꿈을 품지만 계급의 벽에 막힌다. 결혼과 이혼, 자유로운 동거와 사회의 냉대가 이어지고, 비극적인 결말이 기다린다. 소설이 출판되자 캔터베리 대주교는 이 책을 불태웠다고 전해진다. 비평가들은 하디를 음탕하고 비관론적이라고 공격했다. 깊은 상처를 받은 하디는 이후 소설을 완전히 포기하고 시로 전향했다. 그의 말년 30년 이상은 시인으로서의 삶이었다.
하디의 자연주의는 졸라나 드라이저와 결이 다르다. 그는 과학적 체계보다비극적 서정에 더 가깝다. 그의 인물들은 분석되기 전에 먼저 애도된다. 테스가 처형장으로 끌려갈 때, 하디는 실험 결과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의 소멸을 슬퍼하고 있다. 자연주의의 차가운 메스를 들고 있지만, 그 메스를 쥔 손은 떨린다. 그것이 하디를 단순한 자연주의 작가로 분류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다.
세 개의 메스, 세 개의 절개 방식
세 사람은 모두 ‘인간은 환경의 산물’이라는 자연주의의 테제를 공유하지만, 그 테제를 적용하는 방식은 전혀 달랐다. 졸라에게 인간은 사회 구조의 표본이었다. 그는 거시적이고 집단적이며 정치적이었다. 드라이저에게 인간은 욕망의 회로였다. 그는 개인의 내면을 파고들어 충동과 야망이 어떻게 운명을 형성하는지 보여주었다. 하디에게 인간은 운명의 희생자였다. 그는 개인과 사회의 충돌에서 오는 필연적 비극을 다루었고, 그 슬픔을 감추지 않았다.
에밀 졸라
사회의 실험실
소설은 실험이다. 인물을 환경에 집어넣고, 유전과 계급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관찰한다. 감정 없이.
시어도어 드라이저
욕망의 해부도
욕망은 악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인간이다. 그 욕망을 사회가 어떻게 처벌하는지가 문제다.
토머스 하디
운명의 비가(悲歌)
구조는 무겁고 개인은 약하다. 그러나 하디는 이것을 차갑게 기록하지 않는다. 슬퍼하면서 쓴다.
세 사람의 지리적 출발점도 흥미롭다. 졸라는 파리의 가난한 이민자 가정, 드라이저는 미국 중서부의 노동자 계급, 하디는 영국 농촌의 석공 집안 출신이다. 각자가 자신이 경험한 계급의 질감을 소설에 녹였다. 졸라의 탄광 노동자들은 실제 취재의 결과물이지만, 드라이저의 캐리가 상경하는 시카고는 드라이저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며 살아낸 도시다. 하디의 도싯셔 농촌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땅 그 자체다. 이 자전적 밀도가 세 소설에 공통된 무게감을 부여한다.
졸라가 사회라는 기계의 톱니바퀴를 해체했다면, 드라이저는 그 기계에 갈리는 욕망을 들여다보았고, 하디는 갈린 자리의 통증을 기록했다. 세 사람을 합치면 자연주의가 무엇인지 비로소 전체가 보인다.
— 자연주의 문학의 세 얼굴
해부대 위에 오른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연주의 소설이 남긴 유산은 문학을 넘어선다. 졸라가 고발한 노동자의 현실은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과 교차했고, 드라이저의 소설은 미국 리얼리즘의 토대가 되어 싱클레어 루이스, 존 스타인벡,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 이어졌다. 하디의 비극적 세계관은 D.H. 로렌스와 조지프 콘래드의 문학 속에 살아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문학에서 도덕 강의를 추방했다는 점이다. 19세기 이전 소설에서 악당은 벌을 받고 선인은 보상을 받았다. 독자는 교훈을 얻어 집으로 돌아갔다. 졸라, 드라이저, 하디의 소설에서는 테스가 교수형을 당하고, 캐리는 계속 허기져 있으며, 광부들은 파업에 지고도 다시 탄광으로 내려간다. 이것이 진실에 더 가깝다고 세 사람은 주장했다. 그리고 그 주장은 맞았다.
졸라는 1902년 침실에서 석탄 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 사고인지 암살인지 지금도 논란이 있다 — 드레퓌스 사건으로 적이 많았다. 드라이저는 194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사망 며칠 전 공산당에 입당했다 — 마지막까지 자신이 믿는 것을 선택했다. 하디는 88세까지 살며 시를 쓰다가 1928년 도싯셔에서 생을 마쳤다. 그의 심장은 고향 땅에, 나머지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 그 자신은 전자를 더 원했을 것이다.
대표작
- 에밀 졸라: 목로주점(L’Assommoir, 1877), 나나(Nana, 1880), 제르미날(Germinal, 1885), 인간짐승(La Bête humaine, 1890), 붕괴(La Débâcle, 1892) — 루공마카르 연작 20권
- 시어도어 드라이저: 시스터 캐리(Sister Carrie, 1900), 금융가(The Financier, 1912), 타이탄(The Titan, 1914), 미국의 비극(An American Tragedy, 1925)
- 토머스 하디: 귀향(The Return of the Native, 1878), 캐스터브리지의 시장(The Mayor of Casterbridge, 1886),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 1891), 주드(Jude the Obscure, 1895) — 이후 시집 『웨섹스 시편』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