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권의 소설이 있다. 한 권은 1920년 러시아에서 쓰였고, 한 권은 1932년 영국에서, 마지막은 1949년 다시 영국에서 쓰였다. 이 책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서로 다른 정치 체제를 향해 쓰였지만 하나의 질문을 공유한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예브게니 자먀틴의 『우리』,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 — 세 작가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그렸다.
디스토피아 문학은 단순한 공상 소설이 아니다. 현재를 극단적으로 투영한 거울이다. 세 작가 모두 자신이 살던 시대의 공포를 보았다. 소련의 집단주의, 서구의 소비문화, 전체주의 국가의 완벽한 감시 체계. 그들은 이 씨앗들이 어디로 자랄 수 있는지를 상상했고, 그 상상은 예언이 되었다.
세 예언자의 생애
예브게니 자먀틴 (1884–1937) · 러시아 레베디얀 출생 · 『우리』(1924, 해외 출판) — 가장 먼저 쓴 경고
올더스 헉슬리 (1894–1963) · 영국 서리 출생 · 『멋진 신세계』(1932) — 쾌락으로 통제하는 세계
조지 오웰 (1903–1950) · 인도 모티하리 출생 · 『1984』(1949) — 공포로 지배하는 국가
자먀틴: 첫 번째 경고를 보낸 자
1884–1937
예브게니 자먀틴은 볼셰비키 혁명 이전부터 혁명가였다. 두 번이나 체포되었고, 시베리아로 유배되었으며, 영국에서 쇄빙선 건조를 감독하다가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다. 혁명이 성공했을 때 그는 기꺼이 환영했다. 그러나 새로운 권력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그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혁명은 자유를 위한 것이었는데, 왜 자유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가?
1920년에서 1921년 사이에 쓰인 『우리』는 26세기의 ‘단일 국가 (One State)’를 배경으로 한다. 시민들은 이름 대신 번호를 부여받는다 — 주인공은 ‘D-503’이다. 모든 건물은 유리로 지어져 있고, 감시자들이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다. 시간표가 삶의 모든 순간을 규정한다. 섹스조차 허가를 받아야 하며, 예술은 국가가 정한 규범 안에서만 존재한다. 자먀틴이 발명한 것은 단지 소설적 장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소련 체제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었다.
“자유와 범죄는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 진자가 멈추면 시계가 멈추듯이, 어리석음과 범죄가 없다면 국가는 완벽하게 멈출 것이다.”
— 예브게니 자먀틴, 『우리』
소련 당국은 『우리』의 출판을 금지했다. 소설은 영어, 체코어, 프랑스어로 먼저 번역되어 해외에서 출판되었다. 러시아어 원본이 러시아에서 출판된 것은 1988년 — 자먀틴이 죽고 51년 후였다. 소련 작가 동맹으로부터 제명당하고, 스탈린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망명을 허락해달라고 청원한 끝에 그는 1931년 파리로 떠났다. 6년 후 파리에서 홀로 죽었다. 그의 경고를 들은 나라는 정작 그의 조국이 아니었다.
헉슬리: 쾌락이 곧 감옥이 될 때
1894–1963
올더스 헉슬리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 지식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토머스 헉슬리는 다윈의 이론을 공개적으로 옹호한 생물학자였고, 형 줄리안 헉슬리는 著名한 생물학자였다. 올더스는 명문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를 다녔지만, 열여섯 살에 각막 질환으로 거의 시력을 잃었다. 3년간 사실상 맹인으로 살면서 그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읽는 법을 배웠다.
『멋진 신세계』(1932)는 오웰의 세계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무섭다. 이 사회에는 고통이 없다. 시민들은 ‘소마(soma)’라는 행복 약을 매일 복용하며, 섹스와 오락을 자유롭게 즐기고,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도록 태어날 때부터 조건화된다. 역사는 없앴고, 예술과 종교도 없앴으며, 고독도 없다. 불행해질 이유가 전혀 없도록 설계된 세계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문제다. 행복을 위해 인간임을 포기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배받기를 좋아할 것이다. 독재는 굳이 강요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노예 상태를 사랑하게끔 만들어질 것이다.”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재론』(1958)
헉슬리는 포드 자동차의 조립 라인에서 영감을 얻었다. 인간도 공장에서 제조할 수 있다면?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의 다섯 계급은 부화 센터에서 유전자를 조작해 만들어진다. 하위 계급일수록 산소 결핍으로 지적 능력을 제한한다. 사회적 계층은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된다. 그것을 알면서도 모두가 만족한다 — 소마 덕분에.
소설이 출판된 지 26년 후, 헉슬리는 직접 『멋진 신세계 재론(Brave New World Revisited)』을 써서 자신의 예언이 얼마나 빠르게 현실이 되고 있는지 경고했다. 과잉 자극, 소비주의, 선전 기술의 발전. 그는 전체주의가 폭력이 아닌 오락으로 온다고 믿었다. 사람들이 진실에 무관심해지도록 즐거움에 빠트리는 것. 이것이 현대 미디어 환경을 묘사하는 것처럼 읽힌다는 사실이 소름 돋는다.
오웰: 공포를 해부한 목격자
1903–1950
에릭 아서 블레어 —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 는 디스토피아를 상상한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했다. 인도에서 태어나 버마에서 제국주의 경찰로 일했고, 스페인 내전에서 파시즘에 맞서 싸우다 목에 총을 맞았다. 파리와 런던의 극빈 생활, 광산 노동자들 사이에서의 생활, 스페인에서의 전쟁. 그는 이념이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지를 책상이 아닌 몸으로 알았다.
『1984』는 오웰이 폐결핵으로 죽어가면서 스코틀랜드 외딴 섬 주라에서 쓴 소설이다. 빅 브라더(Big Brother)가 지배하는 오세아니아에서 당은 현실 자체를 통제한다. ‘이중사고(doublethink)’ —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믿는 능력. ‘새말(Newspeak)’ — 반역적 생각을 표현할 단어 자체를 언어에서 제거하는 기획. ‘과거의 통제’ — 기록을 끊임없이 수정해 진실의 기준점을 없애버리는 것. 오웰은 전체주의가 단지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통제하려 한다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
“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예속이다. 무지는 힘이다.”
— 조지 오웰, 『1984』, 당의 슬로건
오웰이 『1984』에서 묘사한 것들이 실제로 가능하느냐를 놓고 당대 독자들은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20세기는 속속 그 가능성을 증명했다. 나치 독일의 선전 기계, 스탈린 체제의 역사 조작,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오웰은 이 모두를 하나의 소설 속에 압축했다. 그리고 소설을 완성한 이듬해, 1950년 1월, 46세의 나이로 죽었다. 폐결핵이 그를 이겼다.
세 가지 지옥, 하나의 질문
세 소설은 통제의 방식을 달리한다. 자먀틴의 단일 국가는 유리와 감시로 지배한다. 모든 것이 투명하므로 숨을 곳이 없다. 헉슬리의 세계 국가는 쾌락과 무지로 지배한다. 불행해질 이유를 제거하면 반란할 이유도 사라진다. 오웰의 오세아니아는 공포와 언어 통제로 지배한다. 생각할 수 있는 언어 자체를 없애버리면 저항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자먀틴
투명한 감옥
유리 도시, 번호 시민, 수학적 완벽함. 보이는 것은 지배된다.
헉슬리
쾌락의 독재
소마, 조건화, 오락의 과잉. 행복하게 만들어 자유를 잊게 한다.
오웰
언어의 감옥
빅 브라더, 이중사고, 새말. 생각의 도구를 없애 반역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헉슬리와 오웰은 실제로 서로를 알고 있었다. 오웰이 이튼에서 불어를 배울 때 교사가 바로 헉슬리였다. 훗날 오웰이 『1984』를 출판하자 헉슬리는 편지를 보내 우정 어린 비판을 전했다. “전체주의 국가들이 결국 폭력보다는 심리적 조건화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내 책이 당신 책보다 더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역사는 두 사람 모두 옳았음을 증명했다. 북한은 오웰적이고, 현대 소비 사회는 헉슬리적이다.
자먀틴은 먼저 보았고, 헉슬리는 다르게 보았으며, 오웰은 가장 깊이 보았다. 셋이 합쳐지면 하나의 완전한 경고가 된다.
— 세 디스토피아의 교훈
예언이 현실이 되는 방식
세 소설의 독자들은 종종 “이건 소설 속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세계를 이 소설들과 비교하면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다. 무분별한 감시 카메라와 데이터 수집(자먀틴적),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무한 스크롤과 도파민 설계(헉슬리적), ‘가짜 뉴스’와 사실에 대한 합의의 붕괴(오웰적). 세 소설이 경고한 것은 특정 독재자가 아니라 특정한 경향성이었다. 그리고 그 경향성은 어느 체제에서든 자랄 수 있다.
닐 포스트먼은 1985년 저서 『죽도록 즐겨라(Amusing Ourselves to Death)』에서 이 두 가지 위협을 정면으로 비교했다. 그는 서구 사회가 오웰보다 헉슬리의 악몽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오웰은 우리가 책을 금지당할까 두려워했다. 헉슬리는 우리가 책을 읽고 싶어 하지 않게 될까 두려워했다.” 이 문장이 스마트폰 시대에 더 무겁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먀틴은 망명지에서 죽었다. 헉슬리는 케네디 암살 당일 사망해 그의 죽음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오웰은 소설을 마치고 이듬해 세상을 떴다. 세 사람 모두 자신의 경고가 충분히 들리지 않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들은 그들이 살다 간 후로도 수천만 부 팔렸다. 아직도 새로운 독자들이 이 책을 집어 들고, 두려움을 느끼고, 주변을 돌아본다. 어쩌면 그것이 경고의 정확한 기능이다 — 당장 막지는 못하더라도, 눈을 뜨게 하는 것.
대표작
- 예브게니 자먀틴: 우리(We, 1924), 섬 주민들(The Islanders, 1917), 드래곤(The Dragon, 1918)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1932), 크롬 옐로(Crome Yellow, 1921), 아일랜드(Island, 1962), 멋진 신세계 재론(1958)
- 조지 오웰: 1984(Nineteen Eighty-Four, 1949), 동물농장(Animal Farm, 1945), 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 1938), 버마 시절(Burmese Days, 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