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카프카는 이 첫 문장을 아무런 설명 없이 내던진다. 독자는 왜냐고 묻는다. 소설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것이 답이다.
프란츠 카프카, 사뮈엘 베케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이 세 작가는 같은 질문 앞에 섰다. 인간은 왜 고통받는가? 의미는 존재하는가? 신은 침묵하는가? 그러나 세 사람이 내린 답 — 혹은 답을 거부하는 방식 — 은 전혀 달랐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신앙과 절망 사이에서 피를 흘리며 대답했고, 카프카는 미로 안에서 아무 대답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베케트는 기다림 자체가 삶임을 증명했다.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세기에 살았지만, 같은 어둠을 들여다보았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처형장에서 돌아온 남자
1821–1881
1849년 12월 22일 오전, 도스토예프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 서 있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정치범으로서. 눈보라. 군복 입은 병사들. 첫 번째 무리가 기둥에 묶였다. 총성. 도스토예프스키는 다음 차례였다. 그런데 갑자기 전령이 달려왔다. 황제의 특사. 사형은 취소되었고 시베리아 유형으로 감형되었다. 그 4분 — 처형을 기다리던 4분 — 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나머지 인생을 결정했다.
그는 이후 시베리아에서 4년을 보냈다. 성경 한 권만 허락된 독방. 동료 죄수들은 살인자, 도둑, 떠돌이들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들 안에서 인간의 가장 낮은 바닥과 가장 강렬한 생명력을 동시에 보았다. 그 경험이 『죄와 벌』 (1866)을 낳았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을 낳았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 이반 카라마조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
라스콜니코프는 『죄와 벌』의 주인공이다. 그는 대학생이고 가난하고 지적이며, 스스로를 나폴레옹 같은 “비범한 인간”이라 믿는다. 비범한 인간은 일반적 도덕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 이것이 그의 이론이다. 그래서 그는 무의미한 인간에 불과한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도끼로 죽인다. 그리고 즉시 무너진다. 이론은 완벽했다. 인간은 이론대로 되지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념의 완성이 아니라 이념이 충돌하는 인간의 심리를 300페이지에 걸쳐 해부한다.
그의 소설에는 논쟁이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과 알료샤 형제는 신의 존재를 두고 논쟁한다. 이반의 논리는 무섭도록 날카롭다. 신이 전능하고 선하다면, 왜 아이들이 고통받는가? 그는 천국을 거부한다. 아이들의 눈물로 지은 천국이라면 입장권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장면을 쓰면서 반(反)신론의 가장 강력한 논거를 만들어냈다 — 신을 믿는 작가가. 독자는 이반에게 설득당하면서, 알료샤의 침묵에 압도당한다.
프란츠 카프카 — 설명되지 않는 세계의 목격자
1883–1924
카프카는 살아 있는 동안 거의 무명이었다.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했고, 낮에는 서류를 처리하고 밤에 소설을 썼다. 출판된 작품은 단편 몇 편. 그는 자신의 원고를 전부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친구 막스 브로트는 그 유언을 무시했다. 덕분에 『심판』, 『성』, 『변신』이 세상에 남았다. 카프카는 자신의 문학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도 카프카스럽다.
“누군가가 요제프 K를 중상했음이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어떤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 카프카, 『심판』(1925, 사후 출판) 첫 문장
『심판』의 요제프 K는 체포된다. 무슨 죄인지 모른다. 재판은 진행된다. 법정은 다락방에 있다. 변호사는 도움이 안 된다. 소송은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에 그는 처형된다. 역시 왜인지 모른 채. 카프카의 세계에서 ‘이유’는 등장인물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독자는 안다 — 아, 이런 느낌이구나. 직장, 제도, 가족, 국가. 우리 모두는 어딘가에서 이유 없이 심판받는 느낌을 안다. 카프카는 그것을 언어로 포착했다.
카프카의 부친 헤르만은 체구가 크고 권위적인 사업가였다. 카프카는 평생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41페이지에 달하는 편지 “아버지에게”를 썼지만 끝내 전하지 못했다. 이 편지에서 그는 쓴다. “당신의 세계에서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카프카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항상 거대하고 불투명한 체계 앞에 홀로 선다. 법정, 성, 변신한 몸. 그 체계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아버지처럼.
체코 유대인으로 독일어로 글을 썼다. 프라하의 독일인도, 독일의 유대인도 아니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 결핵을 앓으면서도 글을 계속 썼다. 마흔 살에 죽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20세기 사상가들의 필수 참고문헌이 되었다. “카프카스럽다(Kafkaesque)”는 단어는 사전에 올랐다. 어떤 작가도 자기 이름에서 형용사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단순한 문학적 성취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 인식의 발명이다.
사뮈엘 베케트 — 끝없이 계속하는 자
1906–1989
1953년, 파리 바빌론 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초연되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두 남자가 나무 한 그루 앞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는 오지 않는다. 2막도 마찬가지다. 커튼이 내려갔을 때 관객 일부는 분노했다. “이게 연극이냐”고. 일부는 울었다. 왜인지 몰라도.
“계속할 수 없다. 계속한다.”
— 베케트, 『이름 붙일 수 없는 것』(1953) 마지막 문장
베케트는 아일랜드 태생이지만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쓰면 화려한 표현을 쓸 수 없다. 더 단순하고, 더 정직해진다. 그는 언어를 최대한 줄이고 싶었다. 의미와 소음이 함께 감소할 때 남는 것이 무엇인지 보고 싶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베케트는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동료가 게슈타포에 체포되자 그는 도망쳤다.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 루시용에서 2년간 숨어 살며 농장 일을 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그는 물었다. 이 모든 것이 지난 후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홀로코스트 이후, 히로시마 이후, 진보라는 거대 서사가 무너진 후. 그의 대답은 언어를 더욱 줄이는 것이었다. 잔해만 남길 때까지.
베케트의 후기 산문 『숨결』은 35초짜리 연극이다. 등장인물 없음. 대사 없음. 무대에 쌓인 쓰레기 위로 빛이 밝아졌다가 꺼진다. 아기 울음소리 하나. 그것이 전부다. 탄생과 죽음과 그 사이의 무의미를 35초에 압축했다. 이것은 허무주의가 아니다. 그는 “계속할 수 없다, 계속한다”고 썼다. 계속한다 — 거기에 베케트 문학의 역설적 긍정이 있다.
세 개의 심연, 하나의 물음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베케트를 함께 읽으면 하나의 거대한 대화가 보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신앙의 부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열정적으로 보여주었다. 카프카는 신이 있든 없든 인간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체계 안에 갇혀 있음을 냉정하게 그렸다. 베케트는 그 체계 안에서도 기다림이 계속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계속됨이 삶의 전부라는 것을 말했다.
도스토예프스키
열정의 변증법
고통과 구원 사이에서 인간의 심리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신을 부정하는 가장 강력한 논거를 썼지만, 결국 신앙 안에서 답을 찾은 작가.
카프카
불투명한 체계
이유 없이 심판받고, 이유 없이 변하고, 이유 없이 기다리는 인간. 현대 관료제와 소외의 본질을 우화로 포착했다.
베케트
침묵 속 지속
언어를 끝까지 줄였을 때 남는 것. 계속할 수 없어도 계속하는 것. 그 단순한 사실 안에 문학의 마지막 가능성을 보았다.
세 작가가 직접 서로의 글을 읽었느냐는 부분적으로만 확인된다. 카프카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열독했다. 일기에 그가 “나의 피붙이”라고 적었다. 둘 다 유사한 신경증적 강박, 아버지와의 갈등, 삶을 소비하는 글쓰기를 공유했다. 베케트는 카프카를 연구했고, 프루스트에 대한 에세이에서 두 작가의 차이를 날카롭게 분석했다. 세 사람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나의 거대한 주제를 변주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고통의 끝에서 신을 찾았고,
카프카는 이유 없는 세계를 그대로 바라보았으며,
베케트는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도 계속했다.
— 실존 문학의 세 가지 대답
문장이 버틸 때
세 작가는 공통적으로 자신의 삶 자체가 버티기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간질 발작과 빚과 도박 중독과 싸우며 썼다. 카프카는 결핵과 부친 콤플렉스와 자기혐오 사이에서 밤마다 썼다. 베케트는 전쟁과 망명과 극도의 내향성 속에서 글자를 하나씩 줄여나갔다. 글쓰기는 이들에게 치료도, 도피도 아니었다. 살아있다는 것의 증거였다.
카뮈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실존주의 소설의 창시자”라 불렀고, 사르트르는 카프카에서 부조리의 원형을 보았다. 베케트는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 수상식에는 가지 않았다. 이 세 사람의 영향은 문학을 넘어 20세기 철학, 심리학, 연극 전반으로 퍼졌다. 소외, 부조리, 실존이라는 개념은 이들의 소설 언어를 통해 비로소 살아있는 것이 되었다.
카프카는 원고를 태워달라고 했지만 친구가 남겼다. 베케트는 노벨상을 받았지만 수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처형장에서 살아 돌아와 그 4분을 평생 썼다. 세 사람 모두 문학이란 것을 의심했지만, 결국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마 그것이 답이었을 것이다.
처음 읽는다면 — 입문 추천
도스토예프스키
- 『죄와 벌』(1866) — 이념과 인간 심리의 충돌. 모든 것의 출발점.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 — 신, 죄, 사랑을 한 권에 담은 최후의 소설.
카프카
- 『변신』(1915) — 30분이면 읽히지만 평생 따라다니는 첫 문장.
- 『심판』(1925) — 이유 없이 체포된 인간. 가장 카프카다운 카프카.
베케트
- 『고도를 기다리며』(1953)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연극.
- 『몰로이』(1951) — 언어가 스스로를 해체하는 여정. 베케트 소설의 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