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는 약 860억 개의 신경세포를 품는다. 그 하나하나가 수천 개의 연결을 맺고, 그 연결들이 사고·기억·감각·욕망을 만들어낸다. 19세기 말까지 인류는 이 사실을 몰랐다. 뇌가 어떤 단위로 구성되는지, 신호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기억이 어디에 저장되는지 — 모두 미지였다. 세 명의 과학자가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 각자의 방식으로 지도를 그렸다.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은 뇌가 개별 세포들의 세계임을 증명했고, 찰스 셰링턴은 그 세포들이 어떻게 협력하고 경쟁하는지를 밝혔으며, 에릭 캔델은 기억이 어떻게 물질 속에 새겨지는지를 달팽이에게서 배웠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다. 각자는 서로 다른 세기에, 서로 다른 방법으로, 서로 다른 질문에 답했다. 그러나 그 답들은 하나의 거대한 그림 위에 포개진다. 카할이 뇌의 단위를 정의하자, 셰링턴은 그 단위들 사이의 문법을 서술했다. 셰링턴이 반사와 통합의 원리를 세우자, 캔델은 그 문법이 경험에 의해 어떻게 다시 쓰이는지를 추적했다. 신경과학의 세 장(章)이 이렇게 완성됐다.
신경과학 혁명의 결정적 순간들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뉴런 하나하나를 손으로 그린 사람
Santiago Ramón y Cajal
Santiago Ramón y Cajal (1852–1934)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은 어릴 때 말썽꾸러기였다. 스페인 나바라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학교 교장의 판유리를 돌팔매로 깨뜨리고, 아버지의 책을 몰래 팔아 그림 도구를 샀다. 아버지는 그를 구두장이 견습으로 보냈다가, 이발사 견습으로 보냈다가, 결국 의대에 입학시켰다. 그 반항적인 소년이 훗날 노벨상을 받으리라고는 아무도 몰랐다.
카할의 전환점은 현미경이었다. 1877년, 그는 이탈리아 해부학자 카밀로 골지가 개발한 염색법을 접했다. 질산은으로 신경 조직을 염색하면 임의의 소수 세포가 선명하게 검게 물들었다 — 마치 어둠 속에서 불빛 하나가 켜지듯. 카할은 이 기법을 더 발전시켜 어린 동물의 뇌에 적용했고, 결과물을 특유의 정밀한 필치로 그림으로 옮겼다. 그의 스케치는 오늘날 보아도 예술 작품이다 —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엄밀한 과학 기록이었다.
카할이 현미경 앞에서 확인한 것은 혁명적이었다. 당시 지배적인 견해는 ‘망상설’이었다 — 뇌의 신경 조직이 하나의 연속된 그물망 구조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주창한 사람이 바로 카할에게 염색법을 제공한 골지였다. 그러나 카할의 눈은 달리 보았다. 각 신경세포는 독립된 개체였다.세포들은 서로 연속되지 않고, 아주 미세한 간격을 두고 접촉할 뿐이었다. 카할은 이것을 ‘뉴런설’로 정식화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뇌를 조각할 수 있다.”
—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19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카할과 골지에게 공동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시상식 연단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 골지는 망상설을, 카할은 뉴런설을 주장하며. 역사는 카할의 편이었다. 전자현미경이 발명된 20세기 중반, 세포와 세포 사이의 간격(시냅스)이 시각적으로 확인되면서 뉴런설이 완전히 승리했다. 카할이 맨눈으로 — 정확히는 현미경과 직관으로 — 포착한 진실이, 반세기 뒤 기술로 증명된 것이다.
카할의 유산은 단지 뉴런설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신경세포의 신호가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극성의 법칙’도 제안했다. 수상돌기(dendrite)에서 세포체로, 세포체에서 축삭(axon)으로, 그리고 다음 세포의 수상돌기로. 이 단방향 통신의 원칙은 오늘날 신경과학의 ABC다. 스페인의 작은 마을 출신 말썽꾸러기가 그것을 먼저 그렸다.
찰스 셰링턴: 뉴런들이 모여 만드는 교향악을 해독한 사람
Charles Sherrington
Charles Sherrington (1857–1952)
카할이 뇌의 구성 단위를 밝혔다면, 찰스 셰링턴은 그 단위들이 어떻게 협력하는지를 규명했다. 영국 런던 출신의 셰링턴은 케임브리지와 베를린에서 수학하며 코흐에게 세균학을, 랭글리에게 생리학을 배웠다. 그러나 그의 진짜 관심은 운동이었다 — 개구리 다리가 어떻게 수축하는지가 아니라, 동물 전체가 어떻게 하나의 통일된 동작을 만들어내는지.
셰링턴의 결정적 기여 중 하나는 ‘시냅스(synapse)’라는 단어를 만든 것이다. 1897년, 그는 신경세포 사이의 접합 지점에 이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그리스어 ‘함께 묶다’에서 이 단어를 만들었다. 단순한 명명이 아니었다. 그는 이 접합부가 단순한 전선 이음새가 아니라 신호의 방향을 통제하고, 흥분과 억제를 조절하는 능동적 관문임을 실험으로 보였다.
셰링턴의 반사 연구는 고전이다. 그는 척수를 뇌에서 분리한 동물 모델을 이용해, 반사가 단순한 기계적 반응이 아님을 밝혔다. 팔을 굽히면 이두근이 수축하는 동시에 삼두근이 이완된다 —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신경계가 능동적으로 조율하는 결과다. 한 근육에 흥분 신호가 가면, 반대 근육에는 억제 신호가 동시에 전달된다. 셰링턴은 이것을 ‘상반 억제(reciprocal inhibition)’라 불렀다.
“신경계는 단순히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전선이 아니다. 그것은 통합하고, 조율하고, 결정하는 기관이다.”
— 찰스 셰링턴
셰링턴의 저작 《신경계의 통합 작용(The Integrative Action of the Nervous System, 1906)》은 신경생리학의 교과서가 됐다. 그는 뇌가 단순히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입력을 통합해 하나의 출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였다. 이 ‘통합’의 개념은 이후 신경망 연구의 토대가 됐고, 컴퓨터 신경망이라는 아이디어에도 영향을 미쳤다. 1932년 노벨상은 그 공로를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셰링턴은 94세까지 살며 은퇴 후에도 글을 썼다. 그는 뇌와 마음의 관계에 관한 철학적 질문에도 깊이 천착했다. 만년의 에세이 《인간의 본성 (Man on His Nature, 1940)》은 신경과학자가 아닌 사색가의 목소리로 뇌와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작품이다. 과학자이자 시인이었던 그는 과학이 닿지 못하는 경계에서 조용히 머물렀다.
에릭 캔델: 기억이 시냅스에 새겨지는 순간을 포착한 사람
Eric Kandel
Eric Kandel (1929–)
에릭 캔델은 빈 출신의 유대인이다. 1938년, 아홉 살이었던 그는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했다. 하버드에서 역사를 공부하다가 정신분석에 매료되어 의학으로 전향했고, 결국 기억의 분자적 기반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섰다. 그의 회고록 제목처럼 — 《기억을 찾아서 (In Search of Memory)》 — 그의 과학 여정 전체가 기억이라는 수수께끼를 향해 있었다.
캔델의 선택은 대담했다. 기억이라는 고차원적 기능을 연구하기 위해 그가 고른 모델 생물은 군소(Aplysia californica) — 몸길이 20~30cm의 민달팽이류 연체동물이었다. 군소의 신경세포는 지름이 최대 1mm에 달해, 당시 기술로 개별 세포를 식별하고 전극을 꽂을 수 있었다. 뇌 세포가 860억 개인 인간 대신, 신경세포가 단 2만 개인 군소를 선택한 것은 전략이었다. 단순한 시스템에서 기본 원리를 찾아, 복잡한 시스템으로 외삽한다.
캔델이 군소에게서 발견한 것은 두 종류의 기억이었다. 군소의 아가미에 자극을 반복적으로 주면 단기적으로 반응이 증폭된다 — 이것은 기존 시냅스의 화학적 변화로 설명됐다. 그러나 자극을 더 오래, 더 강하게 반복하면 변화가 지속된다. 이 장기 기억은 단순한 화학 변화가 아니었다.새로운 단백질이 합성되고, 시냅스 자체의 구조가 바뀌었다.캔델은 이 과정에서 CREB(cAMP 반응 요소 결합 단백질)이라는 분자가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규명했다. 기억은 분자 수준에서 새겨지는 물리적 사건이었다.
“기억이 저장될 때, 뇌는 문자 그대로 바뀐다. 우리의 경험은 신경세포의 연결 강도를 물리적으로 변화시킨다.”
— 에릭 캔델
캔델의 발견이 가진 철학적 함의는 깊다. 우리가 경험하고 배우고 사랑하는 모든 것이 — 결국 뇌 속 시냅스 연결의 물리적 변화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물론이 아니라 사실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사실이 기억과 경험의 무게를 오히려 더 크게 느끼게 한다. 어린 시절 빈에서 받은 공포의 기억, 새로운 나라에서 언어를 익히던 고통의 기억 — 그 모든 것이 캔델의 뇌 속 어딘가에 분자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는 그 분자가 어떻게 새겨지는지를 알아낸 사람이다.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캔델은 수상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군소에게서 배웠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었다. 가장 단순한 생물에서 찾은 원리가 인간의 뇌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는 것 — 그 통찰이 20세기 신경과학의 가장 아름다운 성취 중 하나다.
세 개의 장, 하나의 신경과학
| 구분 | 산티아고 카할 | 찰스 셰링턴 | 에릭 캔델 |
|---|---|---|---|
| 핵심 질문 | 뇌는 어떤 단위로 구성되는가? | 뉴런들은 어떻게 협력하는가? | 기억은 어떻게 저장되는가? |
| 핵심 방법 | 현미경·정밀 스케치 | 생리학 실험·수술적 분리 | 분자생물학·군소 모델 |
| 주요 개념 | 뉴런설, 극성의 법칙 | 시냅스, 상반 억제, 통합 | 시냅스 가소성, CREB, 장기 기억 |
| 연구 층위 | 세포 구조 (해부) | 세포 간 신호 (생리) | 분자 수준 기억 (생화학) |
세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역사적 연속이 아니다. 각자는 서로 다른 층위의 문제를 풀었다. 카할은 ‘구조’를 밝혔다 — 뇌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셰링턴은 ‘기능’을 해독했다 — 그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캔델은 ‘변화’를 추적했다 — 그 기능이 경험에 의해 어떻게 달라지는지. 구조, 기능, 가소성 — 신경과학의 세 좌표가 이 세 사람의 손에서 정해졌다.
흥미로운 것은 세 사람 모두 처음에는 연구 대상이 ‘너무 단순하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점이다. 카할은 어린 동물의 뇌를 분석해 성인 뇌에 적용했고, 셰링턴은 척수를 분리한 단순화 모델로 복잡한 행동 원리를 도출했으며, 캔델은 달팽이의 뇌에서 인간 기억의 열쇠를 찾았다. 단순화는 도피가 아니었다 — 그것은 복잡성 속에 숨은 원리를 드러내는 방법이었다.
바르셀로나의 카할이 뉴런 그림을 그리는 동안, 옥스퍼드의 셰링턴은 개구리 척수에 전극을 꽂고 있었고, 뉴욕의 캔델은 군소 아가미에서 단백질 합성 신호를 읽고 있었다. 세 개의 실험실, 세 세기에 걸친 탐구 — 860억 개 뉴런의 지도가 한 조각씩 완성되어 가는 소리.
더 읽어볼 책
- 카할: 라몬 이 카할 『나의 인생 이야기(Recollections of My Life)』 — 뇌를 그린 예술가이자 과학자의 자전적 회고록, 유머와 통찰이 가득하다
- 셰링턴: 찰스 셰링턴 『신경계의 통합 작용(The Integrative Action of the Nervous System)』 — 신경생리학의 고전, 반사와 통합의 원리를 처음으로 체계화한 저작
- 캔델: 에릭 캔델 『기억을 찾아서(In Search of Memory)』 — 노벨상 수상자가 기억의 분자적 기반을 발견해 가는 과정을 자전적으로 서술한 명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