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2년 6월, 벤자민 프랭클린은 번개 치는 하늘에 연을 띄웠다. 번개가 전기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이후 인류는 자연의 가장 난폭한 힘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길들이는 것은 다르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세 명의 인물이 그 거리를 좁혔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전기의 법칙을 발견했고, 니콜라 테슬라는 그것을 문명의 동력으로 만들었으며, 토머스 에디슨은 그 힘을 일상의 빛으로 바꾸었다. 셋은 같은 세기를 살았고, 같은 물리적 현상을 다루었으나 — 이보다 더 다른 세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다.
전기라는 주제는 이 세 인물의 손을 거치며 완전히 다른 색을 띤다. 패러데이에게 전기는 자연의 언어였다. 테슬라에게 전기는 인류의 미래였다. 에디슨에게 전기는 팔릴 수 있는 제품이었다. 이 세 가지 시각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보완하기도 하면서, 우리가 사는 전기 문명의 토대를 쌓았다.
전기 문명의 결정적 순간들
마이클 패러데이: 무지에서 법칙을 꺼낸 사람
Michael Faraday
Michael Faraday (1791–1867)
마이클 패러데이는 대장장이의 아들이었다. 정규 교육이라고는 초등학교 수준이 전부였다. 열네 살에 서적 제본 견습공이 된 그는 제본을 맡긴 책들을 몰래 읽으며 과학을 독학했다. 1812년, 스물한 살의 패러데이는 왕립연구소에서 험프리 데이비의 화학 강연을 듣고 강연 내용을 꼼꼼히 필기한 뒤 데이비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 한 통이 인류의 역사를 바꿨다.
데이비는 패러데이를 조수로 채용했다. 이후 10여 년간 패러데이는 화학과 물리학을 섭렵하며 성장했다. 그리고 1831년, 결정적인 실험이 이루어졌다. 철 고리에 두 개의 코일을 감고, 한쪽 코일에 전류를 흘렸을 때 다른 쪽 코일에도 전류가 생겨남을 발견한 것이다.전자기 유도(electromagnetic induction) — 전기로 자기를 만들 수 있다면, 자기의 변화로도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원리다. 오늘날 세상의 모든 발전기는 이 원리로 돌아간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과학은 한 권의 책이었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나는 창문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 마이클 패러데이
패러데이의 또 다른 유산은 ‘장(場, field)’ 개념이다. 당시 과학자들은 힘이 물체 사이에서 직접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패러데이는 달랐다. 전기와 자기는 공간 전체에 퍼져 있는 ‘장’을 통해 전달된다고 주장했다. 수식이 아니라 시각적 직관으로 도달한 이 개념은 맥스웰이 수학 방정식으로 완성했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의 초석으로 삼았다. 패러데이는 수학을 거의 몰랐지만, 수식을 아는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쫓아다닌 직관을 가졌다.
말년에 패러데이는 기억력이 급격히 쇠퇴했다. 알츠하이머로 추정되는 증상이었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이 제안한 기사 작위와 왕립학회 회장직을 정중히 거절하고, 런던 외곽의 작은 집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죽기 몇 달 전까지 일기를 썼는데, 마지막 기록들은 문장이 점점 짧아지다가 이윽고 끊겼다. 그의 일기는 과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서 중 하나로 꼽힌다.
니콜라 테슬라: 미래를 너무 일찍 본 사람
Nikola Tesla
Nikola Tesla (1856–1943)
니콜라 테슬라는 1884년 단돈 4센트와 시 한 편을 지닌 채 미국에 도착했다. 그리고 에디슨의 회사 문을 두드렸다. 에디슨은 이 세르비아 청년을 고용했고, 테슬라는 밤새 일하며 에디슨의 발전기를 개량하는 성과를 냈다. 에디슨이 약속했다는 5만 달러의 보상은 끝내 지급되지 않았다. 에디슨이 “그건 미국식 유머를 이해 못 한 것”이라 했을 때, 테슬라는 사표를 썼다.
테슬라의 진짜 전쟁은 그 이후였다. 에디슨이 구축한 직류(DC) 시스템에 맞서, 테슬라는 교류(AC) 시스템을 개발했다. 직류는 짧은 거리는 강했지만 장거리 송전에 한계가 있었다. 교류는 변압기를 통해 전압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었기에 수백 킬로미터를 손실 없이 보낼 수 있었다.이것이 ‘전류 전쟁(War of Currents)’의 핵심이었다. 에디슨은 교류가 위험하다며 공개적으로 동물을 감전시키는 실험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가 테슬라의 교류로 환하게 밝혀졌을 때, 전쟁의 승자는 분명해졌다.
“현재는 그들의 것이지만, 미래는 내 것이다. 나는 그것을 위해 일했다.”
— 니콜라 테슬라
테슬라의 야망은 교류 발전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지구 자체를 거대한 도체로 삼아 무선으로 전 세계에 전력을 공급하는 ‘세계 무선 시스템’을 꿈꿨다. 1899년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직경 30m짜리 코일로 번개를 인공으로 만들어냈고, 뉴욕 롱아일랜드에 워든클리프 타워 건설에 착수했다. 하지만 투자자 J.P. 모건은 자금을 끊었다. 무선 전력을 공급하면 돈을 받을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타워는 미완으로 끝났고, 테슬라는 파산했다.
말년의 테슬라는 뉴욕 호텔 방에서 홀로 살며 비둘기를 돌봤다. 그 중 하나의 흰 비둘기를 특히 아꼈다고 전해진다. 1943년 1월 7일, 테슬라는 86세로 혼자 세상을 떠났다. 방 청소부가 다음날 시신을 발견했다. 오늘날 자기장의 단위인 ‘테슬라(T)’는 그의 이름에서 왔고, 무선 전력 전송과 라디오 기술의 원형 역시 그에게서 비롯됐다.
토머스 에디슨: 세상을 바꾼 발명 공장의 설계자
Thomas Edison
Thomas Edison (1847–1931)
토머스 에디슨은 어린 시절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뇌막염 후유증으로 왼쪽 귀가 완전히 먹었고 오른쪽도 절반쯤 잃었다. 정규 교육은 석 달에 불과했다. 어머니가 집에서 가르쳤다. 열두 살에 기차에서 신문을 팔고, 열다섯에 전신 기사가 되었다. 에디슨은 이 경험으로 전기 기술의 실용적 가능성을 체득했다.
에디슨을 에디슨답게 만든 것은 단일한 천재성이 아니라 ‘발명 공장’이라는 시스템이었다. 뉴저지 멘로파크에 세운 연구소는 세계 최초의 산업 연구소였다. 수십 명의 과학자와 기술자가 에디슨의 목표 아래 조직적으로 실험을 반복했다.1879년의 전구는 6천 번 이상의 실험 끝에 나왔다.에디슨이 남긴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은 수사가 아니라 그의 연구 방법론의 요약이었다.
“나는 실패한 게 아니다. 효과 없는 방법 1만 가지를 발견한 것이다.”
— 토머스 에디슨
에디슨이 발명한 것 중에는 전구만 있지 않다. 축음기, 영화 카메라(키네토스코프), 탄소 마이크로폰, 알칼리 축전지 등 1,093개의 미국 특허를 보유했다. 그러나 그의 진짜 업적은 개별 발명보다 시스템에 있었다. 1882년 뉴욕 맨해튼에 세운 상업용 직류 발전소는 처음으로 전기를 상품으로 만들었다. 조명만 파는 것이 아니었다 — 발전소, 케이블, 계량기, 스위치까지 전체 생태계를 설계했다. 이 모델이 현대 전력 산업의 원형이다.
전류 전쟁에서 패한 에디슨은 끝내 교류를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년에는 테슬라가 노벨상을 공동 수상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두 거인이 실제로 함께 노벨상을 받을 뻔했다는 이야기는 과학사의 흥미로운 가정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노벨위원회는 1915년 이 두 사람을 공동 후보로 검토했지만, 서로에 대한 반감이 너무 깊다는 이유로 철회했다고 전해진다.
세 개의 불꽃, 하나의 문명
| 구분 | 마이클 패러데이 | 니콜라 테슬라 | 토머스 에디슨 |
|---|---|---|---|
| 접근 방식 | 실험적 탐구·직관 | 수학적 상상·비전 | 체계적 반복·상업화 |
| 핵심 질문 | 전기와 자기는 어떻게 연결되나? | 어떻게 전기를 세계로 보낼까? | 전기를 어떻게 팔 수 있을까? |
| 주요 업적 | 전자기 유도, 장 이론 | 교류 시스템, 유도전동기 | 전구, 발전소, 축음기 |
| 유산 | 맥스웰 방정식·아인슈타인 | 현대 교류 전력망 | 산업 연구소·지식재산권 |
세 사람 사이에는 흥미로운 계승 관계가 있다.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 법칙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테슬라의 교류 발전기도 에디슨의 직류 발전기도 존재할 수 없었다. 테슬라와 에디슨은 같은 시대에 같은 도시에서 경쟁했지만, 그 방법론은 판이하게 달랐다. 테슬라는 먼저 머릿속에서 완성된 기계를 “보았다”고 했다. 에디슨은 “먼저 만들어보고 고쳐가는” 사람이었다. 이 두 철학의 충돌이 전류 전쟁이었고, 결국 둘 다 문명에 필요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세 사람의 출발점도 다채롭다. 패러데이는 무학의 노동자 계층에서 왕립연구소의 석학으로 올라갔다. 테슬라는 유럽의 교육받은 엘리트로 신대륙의 자본주의 앞에서 좌절했다. 에디슨은 정규 교육 없이 시장의 언어를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전기라는 기술의 역사는 계급과 국적과 야망이 교차한 드라마였다.
런던 왕립연구소의 패러데이가 철 고리에 전선을 감고 있는 시간, 뉴욕 멘로파크의 에디슨은 6천 번째 필라멘트를 교체하고 있었고, 콜로라도의 테슬라는 탑 위에서 인공 번개를 하늘로 쏘아 올리고 있었다. 세 개의 실험실, 세 가지 집착 — 그리고 하나의 밤이 밝아왔다.
더 읽어볼 책
- 패러데이: 제임스 해밀턴 『패러데이: 전기의 아버지』 — 노동자 계층에서 과학 혁명의 주역이 된 삶을 밀도 있게 추적
- 테슬라: W. 버나드 칼슨 『테슬라: 전기 시대의 발명가』 — 천재의 비전과 자본주의의 충돌을 냉정하게 분석한 평전
- 에디슨: 에드먼드 모리스 『에디슨』 — 퓰리처상 수상 전기 작가가 쓴 에디슨의 전 생애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