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2월, 파리의 한 물리학자가 우라늄 염 샘플을 검은 천에 싸인 사진 건판 위에 올려두었다. 그는 흐린 날씨 탓에 실험을 포기하고 건판을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며칠 뒤 꺼내본 건판에는 선명한 상이 맺혀 있었다. 태양빛 없이도,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물질 스스로 무언가를 방출하고 있었다. 앙리 베크렐이 발견한 것은 현상이었다. 그 현상에 이름을 붙이고 본질을 파헤친 것은 마리 퀴리였으며, 그 본질이 원자의 심장에서 나온다는 것을 밝혀낸 것은 어니스트 러더퍼드였다. 세 사람은 서로의 손을 이어받아, 인류가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했던 물질의 내부를 처음으로 열어젖혔다.
방사능의 발견은 우연처럼 시작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필연이 있었다. 19세기 말은 물리학의 황금기였다. X선(1895), 전자(1897), 방사능(1896)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잇달아 등장했다. 물질의 최소 단위라 믿었던 원자가 사실은 내부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암시들이 도처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베크렐의 우라늄 건판은 그 문을 여는 첫 번째 열쇠였다. 퀴리는 그 문 뒤에 어떤 방이 있는지를 탐색했고, 러더퍼드는 방 한가운데 놓인 원자핵을 발견함으로써 현대 핵물리학의 토대를 세웠다.
원자의 심장이 열리기까지 — 결정적 순간들
앙리 베크렐: 서랍 속에서 찾아온 우연
Henri Becquerel
Becquerel (1852–1908)
앙리 베크렐은 물리학자 집안의 3대손이었다.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자신까지 — 세 세대가 모두 자연철학과 물리학에 헌신했고, 심지어 그의 아들도 물리학자가 된다. 그런 그에게 인광(燐光) 연구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어떤 물질은 햇빛을 흡수했다가 나중에 빛을 내뱉는다 — 그 메커니즘이 새로 발견된 X선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1896년 2월의 파리는 유난히 흐렸다. 베크렐은 우라늄 염을 사진 건판 위에 올려 햇빛에 노출시키려 했지만 며칠째 구름이 걷히지 않았다. 그는 실험 준비물을 그대로 서랍에 넣어두었다. 며칠 뒤 건판을 현상해 보니 우라늄 염의 윤곽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빛 없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우라늄이 스스로 무언가를 내뿜고 있었다.
“우라늄 화합물은 스스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진 건판에 영향을 미치는 방사선을 방출한다. 이것은 햇빛의 작용과 무관하다.”
— 앙리 베크렐,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발표(1896)
베크렐의 발견은 중요했지만, 그 자신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끝까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현상을 기술했을 뿐, 그 현상이 원자 내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 해석은 다른 누군가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이미 파리에 도착해 연구실을 준비하고 있었다.
베크렐이 스스로 과소평가한 이 발견은 역설적으로 그의 이름을 영원히 남겼다. 방사능의 단위 ‘베크렐(Bq)’은 오늘날에도 원자력 발전소와 의료 영상에서 매일 사용된다. 어쩌면 과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서랍은 뢴트겐의 음극선관이 아니라 베크렐의 책상 서랍일지도 모른다.
마리 퀴리: 방사능이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
Marie Curie
Curie (1867–1934)
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는 폴란드 바르샤바 출신이었다. 러시아 제국 치하의 폴란드에서 여성이 대학에 다니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녀는 파리로 건너와 소르본 대학에 입학했고,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베크렐이 발견한 우라늄의 이상한 방사선 — 그것이 마리 퀴리의 박사 논문 주제가 되었다.
퀴리는 곧 핵심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방사선의 세기는 오직 우라늄의 양에만 비례했다. 온도도, 습도도, 화학 반응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것은 방사선이 원자 자체의 고유한 속성에서 비롯된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이 현상을 ‘방사능 (radioactivité)’이라 명명했다 — 오늘날 전 세계가 사용하는 단어가 1898년 마리 퀴리의 노트에서 처음 쓰였다.
“우라늄 방사선의 강도는 순전히 우라늄 원자의 양에 의존한다. 이것은 방사능이 원자 속성임을 보여준다. 원자론의 관점에서, 방사능은 원자 자체에서 기원한다.”
— 마리 퀴리, 박사 논문(1903)
퀴리 부부는 우라늄 외에 방사능 물질이 더 있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광물 피치블렌드(pitchblende)가 순수 우라늄보다 훨씬 강한 방사능을 띤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 강하게 방사능을 띠는 원소가 숨어 있다는 뜻이었다. 1898년, 그들은 두 개의 새로운 원소를 발견했다 — 폴로늄(Po)과 라듐(Ra). 폴로늄은 마리의 고국 폴란드를 기려 붙여진 이름이었다.
라듐을 분리하는 과정은 처절했다. 퀴리 부부는 허름한 헛간에서 수 톤의 피치블렌드 찌꺼기를 처리했다. 마리는 끓는 물질을 쇠막대로 저으며 몇 달을 보냈다. 최종적으로 1g의 라듐을 얻기 위해 필요한 피치블렌드는 약 10톤이었다. 그 과정에서 마리의 손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손가락 끝은 방사선 때문에 만성적으로 벗겨졌다. 그녀가 사용하던 노트와 조리법 카드는 오늘날에도 방사능 수치가 너무 높아 납으로 된 상자에 보관된다. 열람하려면 방호복이 필요하다.
마리 퀴리는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191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역사상 최초로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인물이 되었고, 두 개의 다른 분야에서 수상한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편치 않았다.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는 끝내 그녀를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어니스트 러더퍼드: 원자 안에 태양계를 발견하다
Ernest Rutherford
Rutherford (1871–1937)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뉴질랜드의 농부 아들로 태어났다. 과학에 대한 재능이 장학금을 불러왔고, 장학금이 그를 케임브리지로 데려갔다. 톰슨의 제자로 방사선 연구를 시작한 그는 곧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했다. 베크렐이 발견한 방사선이 실은 두 종류라는 것 — 알파선과 베타선 — 을 처음 구분한 사람이 러더퍼드였다.
그의 가장 위대한 실험은 1909년에 이루어졌다. 조수 한스 가이거와 학생 어니스트 마스든과 함께 그는 알파 입자를 얇은 금박에 쏘았다. 당시 물리학계는 원자가 ‘건포도 푸딩’ 모형을 따른다고 생각했다 — 양전하가 고르게 퍼진 반죽 속에 음전하인 전자가 박혀 있는 모습. 알파 입자는 그 반죽을 곧장 통과해 나올 것이었다.
그런데 일부 알파 입자들이 예상치 못하게 크게 튕겨져 나왔다. 일부는 180도 가까이 되돌아왔다. 러더퍼드는 훗날 이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마치 15인치 포탄을 화장지에 쏘았는데 그것이 되돌아와 나를 맞히는 것만큼이나 믿기 어려웠다.”
— 어니스트 러더퍼드, 왕립학회 강연(1911)
1911년, 러더퍼드는 이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안했다. 원자의 질량 대부분은 중심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집중되어 있고, 전자는 그 주변을 돌고 있다. 원자 전체 크기에 비해 핵은 경기장 안의 파리 한 마리만 했다. 나머지는 거의 전부 텅 빈 공간이었다. 우리가 ‘단단한 물질’이라 느끼는 모든 것은, 사실 대부분 허공이었다.
러더퍼드의 업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방사성 원소가 다른 원소로 변환된다는 ‘방사성 붕괴’를 밝혔고, 1919년에는 질소 원자핵에 알파 입자를 충돌시켜 산소로 변환하는 최초의 ‘인공 핵변환’에 성공했다. 연금술사들이 수백 년 동안 꿈꾸던 원소 변환이, 황금을 만드는 마법이 아니라 물리학으로 실현된 순간이었다. 러더퍼드는 노벨상을 화학 분야에서 받았는데, 그는 이것을 농담처럼 말했다. “물리학자인 내가 화학상을 받다니. 내 생애 가장 빠른 변환이군.”
우연·측정·구조 — 방사능을 이해하는 세 개의 열쇠
| 구분 | 베크렐 | 퀴리 | 러더퍼드 |
|---|---|---|---|
| 핵심 기여 | 방사능 현상 발견 | 방사능 측정·원소 발견·명명 | 원자핵 구조 규명 |
| 핵심 질문 | 왜 건판이 감광되었나? | 방사능은 어디서 오는가? | 원자 안에 무엇이 있는가? |
| 주요 방법 | 사진 건판 관찰 | 전기계측·화학 분리 | 알파 입자 산란 실험 |
| 당대 반응 | 흥미로운 현상으로 수용 | 획기적 — 노벨상 2회 | 패러다임 전환 |
| 유산 | 베크렐(단위) 방사능 발견 | 폴로늄·라듐·방사능 개념 | 핵물리학·원자핵 모형 |
세 사람의 이야기는 하나의 계보를 이룬다. 베크렐이 현상을 발견하고, 퀴리가 그 현상을 정량화하여 원자적 속성으로 규정하고, 러더퍼드가 그 속성이 원자핵이라는 구조에서 비롯됨을 밝혔다. ‘이상한 빛’에서 ‘원자핵’까지, 인류의 이해는 불과 15년 사이에 물질의 가장 깊은 층을 꿰뚫었다.
이 세 사람이 공유하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그들 모두 자신이 다루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다. 베크렐은 코트 주머니에 라듐 샘플을 넣고 다녔다가 피부에 화상을 입었다. 마리 퀴리의 건강은 수십 년에 걸친 방사선 노출로 서서히 무너졌다. 1934년 그녀는 재생불량성 빈혈로 사망했다 — 방사능이 자신을 죽였다. 러더퍼드는 그나마 방사선 방호의 중요성을 일찍 인식했지만, 그의 수많은 동료 연구자들이 방사선 관련 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새로운 세계를 여는 대가가 얼마나 컸는지는 그들의 삶이 증언한다.
방사능 연구는 결국 두 갈래 길로 이어졌다. 하나는 원자폭탄이었고, 다른 하나는 방사선 치료와 에너지였다. 퀴리가 라듐으로 암세포를 태웠던 초기 실험은 오늘날 방사선 암 치료의 선구였다. 러더퍼드가 확립한 핵물리학은 핵발전소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세 사람 중 누구도 히로시마와 체르노빌을 예견하지 못했다. 과학의 발견은 종종 발견자의 의도보다 훨씬 멀리 나아간다.
파리의 흐린 2월에 베크렐이 서랍을 열었을 때, 그는 물리학 교과서 한 권의 문을 연 것이었다. 마리 퀴리가 헛간에서 수 톤의 흙을 끓였을 때, 그녀는 두 원소의 이름을 세상에 새겼다. 러더퍼드가 금박 뒤에서 되돌아온 알파 입자를 보았을 때, 그는 원자 안에 태양계를 발견했다. 세 사람이 들여다본 것은 같은 원자였다. 그 원자의 심장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더 읽어볼 책
- 마리 퀴리: 수전 퀸 『마리 퀴리: 삶과 전설』 — 한 여성 과학자의 고독과 집념, 그리고 불꽃 같은 생애를 추적한 정평 있는 전기
- 러더퍼드: 리처드 로즈 『원자폭탄 만들기』 — 러더퍼드에서 맨해튼 프로젝트까지, 핵물리학이 세계를 바꾼 과정을 추적한 역작
- 종합: 로렌 그레이엄 『과학과 러시아 문화』 또는 제임스 처치워드 & 짐 배거트 『원자』 — 방사능부터 원자론까지, 물질의 비밀을 둘러싼 100년의 과학사를 풀어낸 교양서